‘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대세다. 신문이나 잡지를 받아보는 데 그쳤던 ‘구독’은 지니나 멜론 같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영화 구독을 넘어 면도기, 화장품, 책, 맥주, 미술작품, 자동차 등 각종 서비스로 확대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구독경제를 사업화한 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월 9.99달러(약 1만1200원)만 내면 매일 칵테일 한 잔씩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후치(Hooch), 면도날 정기배송으로 320만 명의 유료회원을 확보해 질레트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20%나 떨어뜨린 달러셰이브클럽, 애완견의 간식과 장난감을 정기 배송하는 바크박스(Barkbox) 등이다. 심지어 맥주까지 구독한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업종에서 구독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2019년 5월 현재 구독경제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스타트업만 300여 곳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구독경제 상품은 주로 1인 가구를 겨냥한 생필품(셔츠, 양말, 생리대, 면도날 등)이다. 매번 구입하거나 세탁하는 데 번거로움을 느끼는 이른바 ‘귀차니즘’ 아이템들이다. 미술작품도 구독하고, 원작 가격의 1~3%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그림을 대여해주는 오픈갤러리도 있다. 작가에 대한 설명이 담긴 잡지가 함께 배달되고, 전문 큐레이터가 설명해주기 때문에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자동차도 구독한다. 이 서비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브랜드, 원하는 모델과 색상, 차량 컨디션을 선택해서 원하는 기간만큼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양한 자동차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독경제, 왜 급부상하고 있을까

사실 구독경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의 구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독경제가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구독경제를 통해 소비자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기업은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수익 창출과 충성 고객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구독자는 세계를 통틀어 1억5000만 명 정도 된다. 소비자는 월정액 9500원을 내고 영화·드라마를 무제한으로 내려받아 시청하고, 회사에서는 시청자의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 때문에 가입자 증가 속도는 훨씬 빠르다. 크레디트스위스 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4200억달러(약 470조원)였고, 2020년에는 5300억달러(약 594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둘째, 디지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지니, 멜론과 같은 영화 및 음원 구독 서비스가 급성장한 배경은 디지털화 덕분이다. 구독경제 용어의 창시자인 주오라 창업자 티엔 추오는 201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독경제 강연에서 자신의 언더아머 신발에 부착된 센서를 보여주며 “오늘 529㎉를 소비했다”며 “앞으로 모든 제품이 인터넷에 연결돼 데이터를 생산할 것이고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유도해 수많은 구독경제를 창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소비 주도권이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새로운 소비자층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세대는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강력한 소비자다. 이들은 저성장 경제를 살면서 ‘소유’보다는 ‘경험’을 중시한다. “더 이상 소유하지 않는다. 공유하고, 구독한다”는 특징을 가진 이들은 ‘경험’을 ‘구독’이라는 방식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

밀레니얼 소비자의 최고 숭배 브랜드인 애플은 2019년 여름부터 18년간 유지했던 콘텐츠 판매 앱 ‘아이튠스(iTunes)’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애플 뮤직’ ‘애플 TV’ ‘애플 팟캐스트’ 등 구독형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애플의 변화는 ‘소유의 시대’가 저물고 ‘사용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급성장으로 구독경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2014년 취임 이후 사업을 상업용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한 구독 모델로 바꿨다. 소프트웨어 CD를 판매하는 대신 고객을 구독자로 만들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사업 전반이 활기를 띠면서 기업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마존의 경우 회원제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을 도입해 실적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 기준 미국 전체 가구 수의 절반에 달하는 1억1000만 명이 아마존 프라임에 가입하며 잉여현금흐름은 최근 연평균 29% 증가했다. 시스코는 기존 하드웨어(통신장비) 판매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구독기반 기반 형태의 제품을 2017년 출시했다. ‘구독 매출’이 서비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8%에서 2018년 48%로 높아졌다.

성공 핵심은 ‘기업 생존 부등식’

모두가 구독경제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의 ‘구독’ 성공 신화를 좇다가 혼쭐나고 있는 기업도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무비패스는 월 9.95달러(약 1만1100원) 이용료로 전국의 90%가 넘는 오프라인 극장 어디에서나 매일 영화 한 편씩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300만 명이 넘는 유료회원을 얻었다. 하지만 극장에 내줘야 할 티켓 값이 1억달러(약 1121억원)가 넘는 등 누적 적자에 허덕이며 실패를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구독경제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기업의 생존 부등식’을 이해하고, 그 부등식을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의 생존 부등식 : 가치 > 가격 > 비용

●소비자 가치 : 가치 > 가격

●생산자 가치 : 가격 > 비용

●기업 생존의 길: 가치 증진, 비용 절감


기업의 생존 부등식에서 ‘가격’은 고객이 내는 돈, ‘가치’는 그래서 고객이 얻는 것, ‘비용’은 기업이 들이는 돈이다. 헬스클럽에서 72만원을 내고 1년 회원권을 끊었다고 가정해보자. 72만원은 고객이 낸 ‘가격’이다. 한 달이면 6만원, 하루에 2000원꼴이다.

그런데 만일 고객들이 헬스클럽이 제공하는 ‘가치’가 별로 없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고객이 오지 않아 망하게 된다. 그래서 가치가 가격보다 커야 하는( 가치>가격 ) 공식이 성립돼야 한다. 가격이 하루에 2000원인데 헬스클럽에서 들어가는 운동복과 수건 값, 세탁비, 수도전기료, 운동기구 구입비용, 직원 급여 등의 비용이 고객 한 명당 2500원이라면 적자가 나서 망할 것이다.

무비패스가 이런 사례다. 가격이 비용보다 커야 하는( 가격>비용 ) 공식이 성립돼야 하는 이유다. 기업이 생존하려면 고객이 낸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제공하고, 고객에게 받은 돈보다는 적은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소비자 가치( 가치>가격 )’와 ‘생산자 가치( 가격>비용 )’가 동시에 충족돼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업 생존의 길은 ‘가치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 구독경제

subscription economy. 소비자가 기업에 회원 가입을 하고 매달 일정액을 지불하면 정기적으로 물건을 배송 받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제 모델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한정돼 있던 구독 서비스가 최근 자동차·명품 의류·가구·식료품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재형 < 피플앤비즈니스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