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피해자 사우디 상대 소송서 증언할 수도"
"'9·11 설계자' 사형 면제 조건부로 법정 증언 제안"
2001년 뉴욕 9·11 테러의 '설계자'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일명 KSM)가 미국 사법부가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 중인 KSM은 9·11 테러의 피해자와 유족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핵심적인 증언을 할 수 있다는 제안을 자신의 변호인에게 전달했다.

KSM의 변호인은 이런 내용을 담은 서면을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재판부의 배석 판사에게 전달했다.

9·11 테러는 알카에다가 저질렀지만 피해자들은 사우디 정부가 이를 지원했거나 최소한 방조했다고 주장하면서 2002년 민사 소송을 처음 제기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의 법적 책임을 외국 정부에 따지는 것은 이례적이고 승소 가능성이 작지만 2016년 '테러지원국에 맞서는 정의법'(JASTA. 9·11 소송법)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상원이 재의한 이 법은 자금 지원 등 9·11 테러 연관설이 제기된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 정부 등을 상대로 희생자 가족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소송 원고인 피해자 측은 사우디 정부가 9·11에 책임이 있다는 심증과 정황만 있을 뿐 테러 가담자의 법정 증언이 필요한 터였다.

원고 측은 이 때문에 KSM 등 9·11 테러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3명의 증언을 요구해 왔다.

9·11 테러범 19명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2명이 UAE 국적자다.

KSM의 이런 제안을 미국 사법부나 정부가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한 데다 미국과 밀착 관계인 사우디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파키스탄 출신의 KSM은 1983년(18세)에 미국에서 유학하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1987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투쟁에 본격적으로 가담했다.

1990년대 초중반 필리핀에 은거하면서 1994년 이른바 '보진카 사건'(폭발물로 미국 여객기 12대를 상공에서 연쇄적으로 폭파하려 했던 테러 기획)을 획책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중동의 극단적 이슬람 조직을 떠돌던 그는 1996년 아프간에서 알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나 9·11 테러 계획을 제안한다.

KSM과 알카에다 수뇌부는 수차례 수정·보완을 거쳐 2001년 9월 11일 계획을 실행했다.

KSM은 2003년 1월 파키스탄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체포됐다.

CIA는 그를 체포한 뒤 폴란드에서 잔혹하게 고문해 자백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고문으로 확보한 그의 자백이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논란이 계속된다.

5년간 조사 끝에 2008년 기소된 그에 대한 재판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설치된 군사위원회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