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이노베이션’이란 신흥국에서 태동해 선진국으로 퍼져가는 혁신을 뜻한다.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이동했던 기존 이노베이션의 상식을 뒤집는 말이다. ‘넥스트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인도 남부의 도시 벵갈루루(옛 방갈로르)가 그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인도우주연구기구(ISRO)가 2013년 초저가 탐사선을 자체 개발해 화성 본궤도에 진입시킨 사건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성격의 프로젝트에 미국이 6년간 8000억원을 투입한 데 비해 인도는 3년간 560억원 정도만 투자했다. 미국의 10분의 1도 채 안 되는 비용과 절반의 기간으로 성공한 것이다.

ISRO는 2016년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 시험기 발사에도 성공했다. 2030년께는 사람을 태운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실용 우주선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발사 비용을 현재의 10분의 1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로 꼽힌다.

《넥스트 실리콘밸리》는 소니 인디아 소프트웨어센터 사장을 지낸 저자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최신 인도 정보통신기술(ICT) 리포트다. 저자는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의 최대 수혜자가 인도가 될 것임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제시한다. 그는 벵갈루루가 미래 ICT의 표준 지역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삼성전자,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개발 거점을 두고 있다.

벵갈루루에서 개발된 초저가 심전도기는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현지 병원들은 심장수술 비용을 미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춘 덕분에 각국 환자들로 가득하다. 선진국을 능가하는 기술 혁신이다.

저자는 인도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들도 소개한다. 인도 최대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플립카드’, 배차 서비스 앱(응용프로그램) ‘오라’, 세계 최대 빅데이터 회사 ‘뮤 시그마’,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 업체 ‘인모비’ 등이 그들이다. 저자는 “벵갈루루의 경쟁력은 한마디로 값싸고 우수한 인재들에 있다”며 “내년이면 이곳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이 2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다케야리 유키오 지음, 정승욱 옮김, 세종, 264쪽, 1만6000원)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