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힘들었다니까요~.”

‘포커페이스’로 7타 차를 뒤집은 승부사 기질은 온데간데없다. ‘실눈 웃음’과 함께 틈틈이 터져 나오는 대구 사투리. 여느 ‘20대 경상도 여자’ 모습과 다르지 않다.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에서 끝난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 최종라운드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역대 2위 역전극을 연출하며 ‘포천힐스 퀸’으로 거듭난 조정민(25)이다. 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쉴 틈이 없다. (골프) 레슨은 건너뛰어도 운동은 꼭 챙겨 한다”는 말로 운을 뗐다.
< “한경 1면에 제 얼굴 나왔어요” >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 챔피언 조정민이 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신문에 실린 자신의 우승 사진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그는 “우와! 신문 1면에 사진이 실린 건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 “한경 1면에 제 얼굴 나왔어요” >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9’ 챔피언 조정민이 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신문에 실린 자신의 우승 사진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그는 “우와! 신문 1면에 사진이 실린 건 처음”이라며 즐거워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체력이 ‘싸움의 기술’

올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은 체력과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나흘간 산악 코스는 기술과 체력을 두루 갖춘 ‘양수겸장’ 승부사가 아니면 정복하기 어려웠다. 3라운드까지 한상희(29)는 14언더파를 쳤다. 우승은 12언더파를 친 조정민이 가져갔다. 그는 첫날과 마지막날 똑같이 5타씩을 줄였다. “체력이 곧 자신감이고 기술”이라고 한 조정민의 말이 깊이 와닿은 이유다. 그는 5승 가운데 4승을 산악코스에서 잡아냈다. 이 중 3승은 ‘무념무상으로 쳐야 하는’ 낯선 코스였다.

조정민은 올 시즌 전까지 3승을 거뒀다. 그러나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꾸준한 정상급 선수였어도 ‘최정상급’ 선수를 빛내는 조연에 더 가까웠다. 1승을 거둔 지난해 5억원에 가까운 상금으로 상금순위 9위 안에 들었어도 그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의 실력보다는 팔에 새긴 ‘모든 순간이 기회다(every moment is an opportunity)’라는 문신과 한때 그를 상징한 검은 뿔테안경(라섹수술로 지금은 안경을 쓰지 않는다), 치아교정기 등으로 더 눈길을 끌었다.

지금은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벌써 2승을 거둬 지난해 상금을 거의 따라잡았고 팬층도 한결 두터워졌다. 스윙은 더욱 견고해졌다. 비결을 묻자 그는 “‘(전남) 해남에서의 한 달’ 덕분”이라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 기간 해남에 내려갔어요. 엄마의 간곡한 요청이었죠. 이정은 ‘식스’가 훈련한 그곳 맞아요. 우슬트레이닝센터라는 곳인데 1부투어 골프 선수는 저희밖에 없었고, 대부분 아마추어였고 심지어 축구 선수도 있었어요. 일어나서 1시간30분 동안 언덕길을 뛰고 밥 먹고, 또 하루종일 운동만 했더니 근육량만 2㎏ 늘었어요. 체력이 향상되니 자신감, 성취감도 저절로 늘더라고요.”

'행운의 언덕 퀸' 조정민 "축구선수처럼 극한훈련…체력戰서 빛났죠"
“엄마의 ‘인센티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를 해남으로 보냈던 어머니 윤금순 씨(58)는 지금의 조정민을 있게 한 숨은 공로자다. 뉴질랜드 유학 때도 조정민과 함께 동행했던 윤씨는 그가 목표를 이룰 때마다 꼭 선물을 줬다고 한다. 연습라운드에서 언더파를 치고 오면 조정민이 원하는 휴대폰을 사주는 식이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은 교육법으로 조정민에게 성취감의 ‘달콤함’을 깨닫게 해줬다. 프로 데뷔 후에는 조정민에게 ‘인센티브’를 주며 그의 승부욕을 고취하고 있다. 조정민은 이를 ‘주급’으로 표현했다.

“엄마가 뉴질랜드에서 건강식품 가게를 운영하느라 갑자기 골프를 시작한 저를 돌봐줄 시간이 없었어요. 대신 제가 골프장에서 엄마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꼭 약속한 선물을 사주셨죠. 지금은 엄마에게 ‘주급’을 받고 있는데, 올해 (2승으로) 주급이 꽤 올랐어요. 단순히 성적뿐 아니라 그린적중률, 평균타수 등 주급 평가 기준이 꽤 까다로워요. 하하.”

‘팀 스포츠’란 걸 깨닫자 편해진 골프

골프만큼이나 축구를 사랑하고 자신과 같은 ‘주급’을 받는 손흥민을 좋아한다는 조정민은 올해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개인 종목인 줄 알았던 골프가 결국은 ‘팀 스포츠’였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유학 시절부터 혼자 골프를 해 온 그는 올 시즌부터 ‘팀 조정민’에 합류한 홍두태 코치를 만나면서 골프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했다.

“골프를 하면서 혼자 있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친구가 없는 편이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홍 코치님이 혼자 모든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셨고, 코치님부터 웨이트트레이닝 선생님까지 모두 ‘한 팀’으로 믿고 경기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여기에 뉴질랜드 요트 코치 출신 멘탈 선생님이 해준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제가 한 가지에 빠지면 코스 안과 밖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드는 성격이에요. 코스에서는 무심해지자, 계산하지 말자고 생각한 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목표였던 시즌 2승을 조기 달성한 ‘팀 조정민’은 이제 새로운 고지를 향해 달린다. 대상과 상금왕 등이 목표다. 대상에선 이미 1위를 달리고 있다. 상금랭킹에선 4억7105만원을 모아 1위 최혜진(5억4789만원·20)과 1억원 안으로 격차가 좁혀졌다. 오는 28일 개막하는 맥콜·용평리조트오픈(우승상금 1억2000만원) 결과에 따라 상금 1위에 오를 수 있다.

“상금랭킹 1위나 대상은 운동선수로서 한 번쯤은 꿈꾸는 목표들 아닐까요. 시즌이 반환점을 돌진 않았지만 가장 근접한 기회를 맞이한 것 같아요. 저희 팀과 함께 시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