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재고자산이 올 1분기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버 업체들이 투자를 재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어서 2분기 재고 규모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하반기 전망은 엇갈린다. 글로벌 메모리업체들이 공급 과잉으로 ‘감산’에 들어가기로 한 마당에 서버업체들이 투자를 재개하면 재고가 빠르게 소진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하면서 중국 내 정보기술(IT) 제품의 수요가 다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 팔리는 반도체…재고만 쌓여 간다
2017년 대비 2배로 늘어난 재고

16일 삼성전자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반도체 재고자산은 14조5796억원어치로 지난해 말 대비 14% 증가했다.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시작됐던 2017년 말(6조9728억원)과 비교하면 2년여 만에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말 반도체 재고는 5조1175억원어치로 지난해 말보다 16% 늘었다. 2017년 말 재고는 2조6404억원어치에 불과했다.

재고가 쌓인 이유는 지난해 D램 ‘큰손 고객’이었던 서버 업체들이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수요 대비 공급이 늘어나자 가격은 급격히 떨어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4월 PC용 DDR4 8기가비트(Gb) D램 고정거래가격은 4달러로, 올 들어 넉 달간 44.8%(3.25달러) 급락했다.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한 업체들이 투자를 미루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하루라도 빨리 제품을 구매하려 할 테지만,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투자를 미루는 양상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감산’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배경이다. 설비 가동비용 때문에 제품 생산량을 줄이면 손해다. 하지만 미국 마이크론은 이미 감산을 선택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생산량 조절’과 ‘생산라인 최적화’를 통해 사실상 공급 물량을 계획 대비 줄여나갈 예정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커지는 우려

삼성전자는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까지는 수요가 ‘회복’되고, 하반기부터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2분기도 절반가량 지났지만 수요 회복 정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바일 부문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살아나고 있지만, 서버 시장의 수요는 여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화웨이와 샤오미뿐만 아니라 가격 인하 전략을 택한 애플도 구모델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2분기부터 주문을 늘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MS(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대형 서버 고객들은 여전히 투자를 늦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분쟁은 더 큰 악재다.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글로벌 서버 업체들도 추가 투자를 하는 대신 설비를 효율화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이 다시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면 중국 내 IT 수요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