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포스트 연재

"선배~ 다음달 잡지에 '육아의 고단함을 한 방에 날려준 아이의 '산삼' 멘트를 싣는데 선배도 사연있으면 좀 보내주세요."
"우리 애들은 나에게 그런 멘트를 전혀 해주지 않아. 매일 화만 돋구는 걸.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볼게"
집에 와서 애들이 요즘 내게 어떤 힘을 주는 말을 해줬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산삼과도 같이 내 피로가 싹 풀릴만한 말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날씨가 좋아서 아이들 데리고 나갔는데 큰 아이는 "왜 이렇게 멀리까지 산책을 가자고 해서 날 힘들게 하냐"고 화를 냈고 작은 아이는 자기가 먹으려고 고른 아이스크림을 내가 딴 사람에게 줬다고 눈물바다가 돼서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사느라 편의점을 뒤지는 등 진땀을 흘려야 했다.
'도저히 그런 멘트는 없구나' 포기하려던 순간.
아이들이 어릴 때 한창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카**스토리가 떠올랐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이다 블로그다 열심히 하느라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곳에는 아이들 어린 시절의 다양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아 진짜 불과 몇 년 전인데 이렇게 귀여울수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내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다.
4~5살 무렵의 아이들은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플만큼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았나. 향수에 젖어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산덩어리만큼
좋아요."
기억을 더듬어 봤다.
큰 아이가 6살, 작은 아이가 4살이었던 그때, 난 새로 생긴 육아매체 키즈맘으로 파견이 돼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있었다.
게다가 뭘 모르고 추진력만 넘치던 내가 온라인 뉴스에 그치지 않고 지면잡지까지 만들어보겠다고 설쳐대는 통에 팔자에도 없는 야근을 매일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스스로 삽을 들고 무덤을 팠다고 해야할지. 막상 잡지를 만들자 작정하고 보니 마감 때 1주일 이상 야근은 기본이고 집에는 새벽 2~3시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한창 엄마를 찾아대던 그때 육아를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기사를 쓰느라 정작 내 아이들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것.
또 다시 돌아온 마감 시즌, 연일 이어지는 야근.
일은 쌓여있는데 아이는 자꾸만 '엄마 언제와? 빨리와' 전화만 벌써 몇 통째인지.
'휴 나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고.'
또 울리는 전화벨소리. 이제는 은근 짜증도 나서 버럭하는 나 자신을 말릴 힘이 없었다.
"엄마가 집에 안가고 싶어서 회사에 있는게 아니라고! 나도 가고싶은데 일이 안 끝난 걸 어떡하란 거야! 이렇게 자꾸 들볶으면 나 힘들어서 금방 할머니 되는데...엄마 늙어서 할머니 돼도 좋아?"라고 쏘아댔다.
풀이 죽는가 싶었는데 왠일인지 3일째 퇴근 독촉 전화를 안한다.
그러다 하루 일이 일찍 끝나서 밤 10시에 귀가했다.
아이는 문앞에 서서 "엄마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야 오는거야?"라고 원망섞인 눈길을 보낸다.
전화하고 싶은데 엄마 늙는다는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만 태웠을 아이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또 야근이라 먼저 전화를 했다.
아이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준 사실에 기뻐하며 "난 엄마가 산덩어리만큼 좋아요"란다.
"나도 네가 산덩어리만큼 좋아."
그래 내가 산더미 일 끝내고 얼른 갈게.
지금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나고 아이를 만나니 괜히 눈가가 뜨거워진다.
지금은 키즈맘 파견이 끝나 본사로 돌아온 지 3년 째.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칼퇴를 할 수도 있고 야근도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 줄어든 것 같아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

아이들의 '엄마 이것 좀~!!!!' 귀찮게 불러대는 목소리가 오늘은 조금 덜 귀찮은 느낌. 이 기분이 며칠이나 갈런지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