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특임대사 낙마…인사 검증 실패? 외교관료들의 저항?
외교부는 유독 인사에 민감한 조직이다. 언제, 어떤 해외 공관에 나가느냐가 외교 관료들의 소위 ‘출세 가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선망 지역으로 꼽히는 주미 대사관에 나가려면 각고의 경력관리가 필요한데, 자력만으로는 어렵다. 동료와 선후배들 사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암묵적인 인정을 받은 이는 조직 차원에서 일종의 ‘비호’를 받는 식이다. 순번이 정해진다는 얘기다. 이런 ‘룰’을 어기고 누군가 갑자기 끼어드는 일을 외교부 관료들은 가장 싫어한다.

요즘 외교부가 특임대사들의 갑질 논란으로 시끄럽다. 특임대사란 대통령이 특별임무를 맡긴 민(民) 출신 외교관들을 말한다. 2017년 가을엔 일본 삿포로 총영사가 검찰 조사까지 받은 끝에 결국 직위해제 당했다. 비서에 폭언을 했다는 녹음파일이 등장한 게 원인이었다. 지난 6일엔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가 본국에 송환됐다. 5월 말에 열릴 중앙징계위원회 소명을 위한 귀국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현재 김 대사를 김영란법 위반, 대사관 직원에 대한 갑질 등의 이유로 인사혁신처에 중징계를 요청한 상태다. 김 대사는 외교관료였다가 퇴사 후 삼성 등 민간에서 활약했던 인물이다.

김 대사에 이어 도경환 주말레이시아 대사도 부하 직원에 대해 폭언 등 갑질 혐의로 인사혁신처에 중징계 요청안이 접수됐다. 도 대사 역시 조만간 귀임 조치될 가능성이 높다. 중앙징계위원회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리므로 도 대사는 다음달 초쯤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도 대사는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행정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산업기반실장 등을 지내다 지난해 2월 대사에 부임한 특임 공관장이다.

특임대사들의 ‘갑질’은 임명권자인 청와대도 손을 대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이라는 게 외교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투서가 접수되고, 녹취 파일이 나오면 빼도 박도 못한다는 것이다. 갑질 문화 근절은 문재인 정부의 상징인 적폐 청산의 핵심 중 하나다. 육군 현역 대장이 공관장 갑질이란 혐의로 영창에 갇혔을 정도다. 결국 그는 약 2년 간의 법정투쟁 끝에 무혐의를 받았지만, 이미 명예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잇따른 낙마의 가장 큰 원인은 특임대사 본인에게 귀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명과 진상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투서와 녹취의 원인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리더’에겐 큰 결격사유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봐야할 것이 있다. 특임대사들이 겪는 고초의 원인을 좀 더 깊숙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외교관료들의 조직적인 저항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임대사직은 기존 외교관료의 몫을 뺏는 것이나 다름없다. 4월 말 기준으로 해외 공관은 166곳이다. 이 중 30%를 특임대사 등으로 채워 외부에 개방하겠다는 게 문 정부의 공약이다. ‘인사가 만사’인 외교부 입장에선 곱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외교관 특유의 조직 문화도 특임대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타부처 과장은 “공무원들도 간혹 해외 업무를 할 때 외교부 직원들과 협의를 할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 외교관들이 얼마나 일을 고압적으로 하는 지 알게 된다”고 꼬집었다. 민(民)의 시선에서 볼 때 외교관들이 통상적으로 해오던 업무 스타일과 관행은 눈에 거슬릴 수 밖에 없다. 베트남의 김 대사를 동정하는 목소리가 현지 기업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5월, 6월 말에 잇따라 열릴 중앙징계위원회는 여러모로 지켜볼 게 많을 것 같다. 외교관을 고르는 대통령의 선구안이 잘못된 건지, 직업 외교관들의 조직적인 저항 탓인 지 언젠가는 규명이 이뤄질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