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자 한진그룹의 유력한 백기사로 거론됐던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권 방어를 위한 어떤 역할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명동 한진그룹 본사 사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자 한진그룹의 유력한 백기사로 거론됐던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권 방어를 위한 어떤 역할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명동 한진그룹 본사 사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사진)이 행동주의 펀드인 KCGI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15일 밝혔다. 조정호 회장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조양호 회장의 아들이자 조카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한진그룹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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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호 회장의 최측근인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메리츠금융그룹은 전업 금융그룹으로 앞으로도 금융에만 전념할 계획”이라며 “한진칼 지분을 인수해 백기사나 흑기사 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철저한 중립을 지키겠다는 조정호 회장의 확고한 의지를 대신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정호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권과 관련해 중립을 지키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의 최대주주로, 지분 29.96%를 보유한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사다.

김 부회장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있는 상황에서는 메리츠금융그룹뿐만 아니라 대주주인 조정호 회장 개인 자격으로도 제도적으로 (한진칼에) 투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24조는 대기업집단 금융회사가 비(非)금융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이어 “선대 회장이 창립한 기업이어서 조정호 회장도 당연히 한진그룹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면서도 “그것은 선대 회장에 대한 마음일 뿐 현실적으로 투자 의사 결정과는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이 조정호 회장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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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경영권 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의 지분은 조 회장이 17.84%, 조원태 사장이 2.3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각각 2.31%, 2.30%를 갖고 있다. 조 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유력한 가운데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선 조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아야 한다. 문제는 지분 승계 과정에서 2000억원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정석기업, 한진, 대한항공 등 나머지 계열사 지분 매각만으로는 상속세를 낼 여력이 없다.

조 사장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각할 경우 2대 주주인 KCGI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는 한진칼 지분 13.4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시장에선 조 사장이 한진칼 지분을 인수한 뒤 백기사(우호세력)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조카인 조 사장을 돕는 백기사로 나서는 등 향후 한진그룹 경영권 확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2002년 별세한 뒤 조양호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던 조정호 회장이 오히려 KCGI를 도와 흑기사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악성 루머까지 흘러나왔다. 지난 13일 조양호 회장 빈소를 찾은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가 한진그룹의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침묵은 여러 가지 가설을 증폭시켰다. 시장의 혼란이 가중됐다. 조정호 회장이 김용범 부회장의 대리 인터뷰를 통해 서둘러 진화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김 부회장은 “최근 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일각에서 소설 같은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조정호 회장은 백기사든 흑기사든 나서지 않고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어 “메리츠금융그룹은 금융 분야에 성장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 외 분야에는 눈을 돌린 적이 없다”며 “다른 분야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건 조정호 회장의 확고한 뜻”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조정호 회장이 조카인 조 사장을 돕기 위해 다른 우호적 투자자를 설득하는 등의 계획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정호 회장은 어떤 방법이든지 조 사장을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백기사 후보로 점쳐졌던 조정호 회장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조 사장이 대한항공과 협력 관계인 미국 델타항공 등 외국 기업이나 금융회사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