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 여의도 금융가 모습.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19년 서울 여의도 금융가 모습.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서울의 국제금융허브 경쟁력 순위가 3년6개월 만에 세계 주요 도시 중 6위에서 36위로 추락했다. 아시아에서도 중국과 일본 주요 도시에 뒤져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세계 각국이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 뛰고 있지만 한국은 금융공기업 지방 이전과 각종 포퓰리즘 정책 등 정치논리가 금융산업을 짓누르면서 경쟁력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단독] 세계 6→36위…금융허브 서울 '끝없는 추락'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이 18일 공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 112개 도시 중 36위를 차지했다. GFCI는 세계 금융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설문조사와 세계은행(WB)과 세계경제포럼(WEF) 등 외부 기관이 평가하는 △비즈니스 환경 △인적 자원 △인프라 △금융산업 발전 △일반 경쟁력 등 5개 분야의 지수를 종합해 산출한다. 2007년 이후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발표되는 GFCI는 세계 주요 도시의 금융허브 경쟁력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수로 꼽힌다.

이번 조사에서 서울은 지난해 9월 조사(33위)보다 3계단 하락했다. 조사가 시행된 이후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던 2015년 9월(6위)과 비교해서는 30계단 떨어졌다. 10년 전인 2009년 9월(35위)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시아 도시 중에서도 서울은 11위에 그쳤다. 아시아 톱10 도시로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타이베이를 비롯해 중국이 5곳(상하이 베이징 선전 광저우 칭다오), 일본은 2곳(도쿄 오사카)이 포함됐다.

서울과 함께 금융중심지(금융허브)로 지정된 부산은 46위로, 작년 9월(44위)보다 두 계단 하락했다. 최고 순위를 기록했던 2015년 3월(24위)과 비교해 22계단 떨어졌다.

'금융허브 쪼개기'로 서울 경쟁력 '뚝뚝'…亞 10위권 밖으로 밀려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가 2015년 9월 6위에서 올해 36위로 3년6개월 만에 30계단 떨어진 것은 정부가 금융허브를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 추진한 결과로 금융계는 분석하고 있다. 금융인프라 집적을 통한 글로벌 금융회사 유치 대신 지방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금융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선 국책은행의 추가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제3 금융허브 지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어 한국에선 금융허브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독] 세계 6→36위…금융허브 서울 '끝없는 추락'
서울은 아시아서도 인정 못 받아

서울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금융허브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얼마 안 된 데다 금융인프라도 열악했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금융산업을 키우기 위해 2003년 12월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키우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여의도에 서울국제금융센터(IFC)를 짓자는 아이디어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서울의 금융허브 경쟁력 순위는 30~50위권에 머물렀다. 2009년 9월만 해도 35위였다. 서울의 순위가 가파르게 오른 것은 여의도에 오피스 3개동 및 특급호텔과 대형 쇼핑몰이 포함된 IFC가 2013년 완공된 이후부터다. 이후 외국 금융사들의 입주가 시작되며 금융허브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은 2015년 9월 역대 최고인 6위로 평가했다. 당시 서울은 △비즈니스 환경 △인적 자원 △인프라 △금융산업 발전 △일반 경쟁력 등 5개 분야 평가 중 인프라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엔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도 11위로 밀려났다. 전문가들은 서울과 부산으로 분산된 금융중심지(금융허브) 전략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집적된 인프라를 통해 글로벌 금융회사를 유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금융허브를 금융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균형발전의 관점에서 추진해왔다”고 지적했다.

2014~2015년 주택금융공사와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신용보증기금, 국민연금공단 등을 지방으로 이전했다. 이후 지방 이전에 따른 비효율성이 제기되며 순위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전 후 인력이 20%가량 퇴사하기도 했다.

전주도 제3금융허브 지정되나

일부 금융공기업이 이전한 부산도 순위가 떨어진 건 마찬가지다. 이번 조사에서 부산은 46위로, 최고 순위를 기록했던 2015년 3월(24위)과 비교해 22계단 떨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에선 제3 금융허브 지정이 논의되고 있다.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 일대에 2016년 말 조성이 마무리된 전북혁신도시를 서울과 부산에 이은 제3의 금융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제3 금융허브 지정을 놓고 전북과 부산의 정치권 및 지역사회는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전라북도는 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부산시는 국책은행의 추가 이전을 통해 부산 문현금융단지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및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을 요구하는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해당 국책은행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산은 노조도 성명서를 통해 “산은과 같은 핵심 금융 공공기관마저 지방 각지로 흩뿌리자는 것은 금융정책을 포기하고 금융산업을 버리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은성수 수은 행장도 올초 기자간담회에서 “외교부와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수은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서울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세계적 금융도시인 뉴욕과 런던 홍콩 등에 비춰볼 때 금융허브는 금융인프라가 집적된 곳을 중심으로 둬야 금융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