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비켜준다는 것 - 안도현(1961~)
비켜준다는 것

둥굴레 새싹이
싹의 대가리 힘으로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게 아니다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주었으므로
저렇드키, 저렇드키
연두가 태어난 것

땅이 비켜준 자리
누구도 구멍이라 말하지 않는데
둥굴레는 미안해서 초록을 펼쳐 가린다


봄은 머리부터 나온다. 땅을 뚫고 고개 내민 새싹이라 하려다가 자세히 보니,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준 것이다. 그 비켜준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 봄을 더 따뜻하게 한다. 땅도 둥굴레도 서로 원했던 봄이라서 좋다. 봄비 지나가자 나무와 땅과 돌이 펼쳐내는 너무나 환한 숨구멍들, 비켜준 자리를 보니 문득 미안해진 둥굴레가 초록을 펼쳐 가려놓은 마음은 어찌 그리 싱그러운가! 그래, 정말 봄은 빈 구멍을 가리려고 왔다지.

이소연 시인 < 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