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급 디자인 감각 뿐 아니라 탁월한 기업가 정신 겸비해

19일(현지시간) 명품 브랜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언론은 앞다퉈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속보를 내보냈다. 이들 대부분은 그가 특유의 예술 감각을 통해 샤넬을 키워낸 사연을 조명했다. 하지만 라거펠트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언급한 경우는 드물었다. 샤넬의 디자인을 전두지휘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그는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와 자신의 이름을 딴 ‘카를 라거펠트’ 브랜드를 동시에 이끄는 높은 사업 수완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출판계, 영화계, 식품계 등 여러 산업을 넘나드는 사업 활동을 이어갔다. 라거펠트의 탁월한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샤넬 브랜드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구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라거펠트는 브랜딩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 손이 닿는 모든 것을 브랜드로 승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포니테일 스타일 백발과 검정 선글라스는 라거펠트가 자신을 브랜딩하는 데 활용한 대표적 소품이다. 알파벳 C자가 교차된 샤넬 특유의 로고도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그는 “오늘날 로고는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라거펠트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샤넬은 라거펠트를 디자이너로 영입했던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과거 코코 샤넬이 고수했던 고풍스러운 디자인 기조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샤넬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점차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됐다. 라거펠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70년대에 샤넬은 의사 사모님들이나 입는 덜떨어진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과거 디자인 콘셉트를 과감히 버리고 디자인에 산뜻한 재미를 더하는 시도를 이어나갔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트위드 미니스커트도 이때 만들어졌다.

간혹 상식을 뛰어넘는 시도를 통해 큰 성과를 이룬 경우도 있다. 그는 위험성이 높은 사업에 큰 기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라거펠트는 2004년 기성복 브랜드인 H&M과 협업을 진행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명품 브랜드와 값싼 기성복 브랜드가 함께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라거펠트의 시도 이후 명품 업계에서는 기성복 브랜드와 협업하는 유행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럭셔리 민주주의’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라거펠트는 이후 “고민을 많이 했지만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라거펠트는 평소에도 파격적인 시도를 통해 높은 성과를 이뤄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그가 기획한 패션쇼들은 쇼핑몰, 해변, 우주를 넘나드는 다양한 콘셉트로 높은 인기를 누리곤 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