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 게 제일 무섭다"
이재용 부회장 "영업비밀을 말했네"
문재인 대통령-재계 총수들 靑산책
이재용 "삼성 공장·연구소 방문해 달라"…문재인 대통령 "투자하면 언제든 가겠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주 52시간 해도 연구원들은 짐 싸들고 집에 가 일해"
구광모 LG 회장 "공기청정기 개발 위해, 미세먼지 연구소도 만들었다"
산책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방준혁 넷마블 의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등이 함께했다.
이재용·최태원, 반도체 업황 열띤 토론
문 대통령은 반도체 라이벌인 이 부회장과 최 회장을 상대로 반도체 경기 전망 등에 대해 얘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향해 “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어떠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곧바로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라고 답했다. 나란히 걷던 최 회장이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하자, 이 부회장은 최 회장의 어깨를 툭 치며 “이런, 영업 비밀을 말해버렸네”라며 웃었다.
최 회장은 이어 “반도체 시장 자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가격이 내려가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면 된다.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가격이 좋았던 시절이 이제 조정받는 것”이라고 시장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참모들이 매일 아침 보고하는 지표에서는 미처 알아차릴 수 없는 현장 목소리였다. 문 대통령은 이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고 최 회장은 “집중과 선택의 문제”라며 “기업이 성장하려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북 사업 속도 내겠다”
문 대통령은 산책에 동행한 현정은 회장에게 말을 건네며 대북사업에 관심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현대그룹이 요즘 희망 고문을 받고 있다. 뭔가 열릴 듯 열릴 듯하면서 열리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결국은 잘될 것”이라고 위로를 건넸다. 산책을 마치기 직전 현 회장에게 다시 다가가 “속도를 내겠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취재진은 ‘남북한 경협 전반을 염두에 둔 발언인가, 혹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발언인가’라고 물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 같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은 최근 한국을 뒤덮은 미세먼지를 화제로 삼았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삼성과 LG는 미세먼지 연구소가 있다고 한다”고 말을 꺼냈다. 이 부회장은 “공부를 더 해서 말씀드리겠다”며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등 때문에 연구소를 세웠는데 미세먼지 연구소는 LG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자 구광모 회장은 “그렇다. 공기청정기를 연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삼성전자 연구소 방문을 즉석에서 제안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요청에 문 대통령은 “얼마든지 가겠다”며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는다거나 연구소를 세운다면 언제든지 가겠다”고 화답했다.
서정진 회장 “삼성과 같이 몇백조원 할 수 있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건강으로 옮겨가 서정진 회장이 문 대통령에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문 대통령이 “못하는 거다. 그냥 포기했다”고 답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 회장은 “세계 바이오 시장이 1500조원 규모인데, 이 중 한국이 10조원 정도만 차지하고 있다”며 “삼성 등이 같이하면 몇백조원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우리 이공계 학생 가운데 우수한 인재가 모두 의대, 약대로 몰려가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제는 바이오 의약산업 분야의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겠다”고 하자, 서 회장은 “헬스케어산업이 가장 큰 산업이다. 일본은 1년 예산의 30%를 이 분야에 쓴다”고 답했다.
서 회장은 현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에둘러 기업 애로사항을 전했다. 그는 “외국 기업이 한국과 같이 일하려고 하는 것은 일하는 스타일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주 52시간 정책을 해도 우리 연구원들은 짐을 싸 들고 집에 가서 일하고 양심고백을 안 한다”며 웃었다.
손성태/박재원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