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 준 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사와 감사 임기는 상법상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상법 제383조 제2항, 제410조). 상법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에 의해 이사·감사를 임기 중 언제든 해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사·감사가 임기 만료 전에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당한 경우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상법 제385조 제1항, 제415조). 이처럼 상법은 주주의 회사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위해 언제든지 이사·감사를 해임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이사·감사에게는 경영자로서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함으로써 주주와 이사·감사 쌍방의 이익을 조화시키고 있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그럼 임기 만료 전에 이사·감사를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로는 어떤 것이 인정될까. 또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된 이사·감사가 회사를 상대로 보수 상당액을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할 경우 남은 임기 동안 다른 직장에서 얻은 이익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해야 할까. ‘대법원 2013년 9월26일 선고, 2011다42348 판결’이 이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의 사실 관계를 보자. A회사는 임시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임기 3년의 감사 갑을 취임 1년5개월 만에 해임했다. A회사는 갑이 △감사정보비, 업무추진비, 출장비 등 일부를 부적절하고 과다하게 집행한 점 △A회사 소재지가 아니라 서울 등지에서 휴무일에 법인카드를 사용한 점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자인한 12만7000원과 용도가 불분명한 42만여원 등을 부정 사용한 점 △서울로 출장 가서 자택에서 숙박했으면서도 숙박비를 지급받은 점 △법인카드로 주유 대금을 부당하게 지급한 점 △휴가 처리하지 않고 동유럽을 여행한 점 △사택을 배정받으며 부당 지시를 하고 사택에 부당하게 회사자금을 사용하게 한 점 △교체 연수가 되지 않은 업무용 차량을 부당하게 압력을 가해 교체하고 도색과 판금 수리 등에 회사 비용을 지출한 점 △A회사 계약 체결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점 △감사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등 감사 업무 수행 방식이 부적절한 점 등을 이유로 해임했다.

갑은 해임당한 이후 다른 회사에 상근감사로 취업해 보수를 받았다. 이후 갑은 A회사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회사는 정당한 해임이라고 주장하며, 그 해임이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임기 중 갑이 다른 곳에서 받은 보수만큼은 회사가 부담할 손해배상액에서 상계(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화 등 신뢰 관계 상실만으론 부족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임원은 언제든 해임 가능"… 정당한 이유 없으면 잔여 보수 줘야
서울고법은 A회사가 갑을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한 것으로 판단했다. 상법 제385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이유’라 함은 주주와 이사·감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사·감사가 그 업무와 관련해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했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회사의 주요 사업 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감사가 그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할 때 비로소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①갑이 감사정보비, 업무추진비, 출장비 등 일부를 부적절하게 집행했지만 갑이 개인적 목적으로 감사정보비 등을 사용해 회사에 실질적으로 손해를 입혔음이 분명하지 않고, 감사정보비 과다 사용으로 감사실 직원들의 감사 업무 수행에 지장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②갑이 A회사 소재지가 아니라 서울 등지에서 회사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므로 휴무일에 서울 등지에서 법인카드를 모두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고, 갑이 개인적으로 사용했거나 용도가 불분명한 금액도 200만원을 넘지 않는다. ③회사로서는 부당 사용한 금전의 반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으나 본래 용도에 사용하지 않은 금액을 밝히지 못했고 이에 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④A회사 여비 규정에 의하더라도 자택이 있는 곳으로 출장 가는 경우 숙박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으며, 출장비가 부당하게 집행됐을 경우 회사는 여비 규정에 따라 갑에게 정산을 요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 ⑤갑이 회사 업무에 관한 감사 권한이 있는 이상 회사의 계약 체결 과정에 관여했다는 사정만으로 계약 체결 업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 ⑥감사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직원들에 대한 언사의 정도가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감사 업무 수행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행동이거나 업무 태만에 관한 질책의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여러 사정으로 볼 때 갑에게 업무추진비 등 일부의 부적절한 집행 등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사유만으로는 갑이 감사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만한 객관적 상황을 인정할 정도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정당한 해임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A회사는 갑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데 그 손해액은 남은 임기동안 갑이 재직하면서 받을 수 있었던 보수 상당액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법은 “해임된 감사는 바로 회사와의 위임 관계가 종료돼 더 이상 회사를 위해 위임 사무를 처리해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감사가 해임 후 임기 만료일까지 다른 회사에서 새로운 위임 계약 등에 따라 보수를 수령했더라도 이를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른 직장에서 받은 보수 공제해야”

대법원은 고법 판결을 받아들였다. 다만 임기가 정해져 있는 감사가 임기 만료 전에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돼 회사를 상대로 남은 임기 동안 또는 임기 만료 때 얻을 수 있었던 보수 상당액을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하는 경우, 그 감사가 남은 임기 동안 회사를 위한 위임 사무 처리에 들이지 않게 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른 직장에 종사해 사용함으로써 얻은 이익이 해임과 상당한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면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액 산정 때 공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위 사건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감사를 해임한 것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는 찬동한다. 다만 해임당한 후 다른 회사에 취업해 받은 보수를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하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부당 해고 시 근로자의 ‘중간수입공제’ 법리를 이사 해임에 차용한 것이다.

회사와 이사·감사 관계는 ‘위임 관계’

먼저 근로자와 회사의 관계는 ‘근로계약’ 관계인 데 비해 이사와 회사와의 관계는 ‘위임계약’ 관계다. 또 근로자의 경우는 부당 해고가 문제인 데 비해 회사는 이사·감사를 언제든 해임할 수 있으므로 그 해고는 적법한 해고다. 근로자가 부당 해고 상태에서 회복되면 다시 정상적인 근로 관계가 계속되고, 중단된 근로 기간에도 근로한 것으로 간주돼야 마땅해 그 기간 동안 재취업했다면 그 보수를 공제해야 한다.

이에 반해 위임 관계는 해소와 동시에 회사와 어떤 관계도 남지 않는다. 따라서 위임 관계 해소 후 새 직장을 구하든 말든, 보수를 받든 말든 무슨 상관인지 의문이다. 이와 같이 근로 관계와 위임 관계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근로자의 부당 해고 관계에 관한 이론과 실무를 이사 해임 관계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판결대로라면 해임된 이사는 정해진 임기까지는 일하지 않고 쉬어야 충분한 손해배상을 받는다는 것이 되고, 부지런히 새 직장을 구하면 손해배상을 덜 받는다.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이 판결은 이사의 지위(위임 관계)를 근로자의 그것(고용 관계)으로 격하시킨 판결이라고 하겠다.

■ 부당 해고된 근로자는 손해배상액서 새 직장 수입 공제

근로자가 부당 해고 기간에 새 일터에서 보수를 받으면 이를 ‘중간수입’이라고 한다.

이 중간수입은 해고 전 회사에서 본래 받아야 할 임금에서 공제된다. 판례는 해고 후 상태를 민법 제538조 제1항에 규정하는 채권자 지체(즉 사용자 책임)에 의해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사용자에게 임금 전액을 지급할 것을 명하되, 근로자의 중간보수는 동조 제2항이 정하는 ‘채무자가 채무를 면함으로써 얻은 이익’으로 보아 임금에서 공제해왔다(대법원 1991년 6월28일 선고 90다카2527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