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여성서양화가 나혜석의  ‘자화상’.
한국 최초 여성서양화가 나혜석의 ‘자화상’.
지난해부터 출판계에 페미니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근대 신여성의 효시’라고 불리는 예술가 나혜석(1896~1949)을 다룬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양성평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봉건적인 성 관념을 거부한 그의 삶과 사상을 담은 글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투·페미니즘 바람 타고… 출판가 '나혜석 다시 읽기'
6일 출간된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은 그의 글 중 17편의 소설과 논설, 수필, 대담을 뽑아 현대어로 순화해 엮은 책이다. 나혜석은 진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국 여성 최초로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조선 여성 중 최초로 개인전을 여는 등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자신의 예술성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제도를 글과 그림을 통해 깨부수고자 했던 나혜석은 유교 전통의 여성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조선의 페미니스트’였다.

미투·페미니즘 바람 타고… 출판가 '나혜석 다시 읽기'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에서 첫 번째로 수록된 ‘경희’는 1918년 3월 ‘여자계’에 발표된 자전적 소설이다. 일본 유학생인 주인공 경희가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와 부모로부터 결혼을 강요받는 데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나혜석이 실제 겪은 일이기도 하다. 부잣집에 시집가길 바라는 부모에게 경희는 “먹고만 살다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라며 맞선다. 평범하게 남편을 내조하며 살아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살 수 없는지’ 고민하는 모습 또한 섬세하게 표현됐다.

2부에 수록된 ‘이혼고백장’은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조하는 남성중심주의를 고발하는 수기다. 나혜석은 파리 유학 시절 교제한 최린에게 유학에서 돌아온 이후 다시 편지를 보내자, 남편은 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는 자신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하며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가부장제를 비판한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나혜석의 글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우애 결혼, 시험 결혼’에서는 이혼의 비극을 막기 위해 시험 결혼이 필요하고, 시험 결혼 기간에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첫 아이를 낳고 난 뒤 발표한 《모 된 감상기》에서는 “임신을 인정하기 싫었고, 촉망받던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헝클어져 원통한 마음이 컸다”며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며 사회에서 학습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출간된 《조선 여성 첫 세계일주기》(가갸날)는 나혜석이 1927년 6월~1929년 3월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유럽 각지와 미국을 돌며 겪은 일들을 풀어낸 글이다.

세계 각지의 신문물을 접하며 나혜석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는 옷을 사 입는 중국 하얼빈 여성들을 바라보며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 여성이 불쌍하다”고 개탄한다. 영국 런던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큰 감동을 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내가 훗날 조선 여권 운동의 시조가 될지 압니까”라고 말한 대목도 흥미롭다. 남성에게 종속되는 존재가 아닌, 한 개인으로 탈바꿈해가는 신여성의 여정을 그린 중요한 기록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