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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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 분당에 있는 현대건설기계 본사 사장실. 임직원 100여 명의 올해 해외출장 일정이 빽빽이 담긴 대형 보드가 걸려 있었다. 사원부터 임원까지 출장 기간과 지역이 부서별로 표시돼 있었다. 가까운 일본부터 인도, 가나, 멕시코 등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전체가 이들의 출장지였다.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사장은 평소 이 보드를 통해 임직원 출장 일정을 머릿속에 꿰고 있다. 누가, 언제, 어디로, 왜 나가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이 해외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회사 연간실적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대건설기계 매출의 80%는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무대는 세계다”

현대건설기계는 굴삭기 지게차 휠로더 등을 생산하는 회사로 지난 4월 현대중공업에서 분사했다. 이 회사 초대 사령탑을 맡은 공기영 사장은 전형적인 해외 영업통으로 알려졌다. 취임하자마자 ‘해외 딜러 개발 전담팀’부터 꾸렸다.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별동대다. 김수원 팀장을 비롯해 총 다섯 명으로 조직된 이들은 1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생활한다. 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딜러를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최근 아시아에서 새로운 대형 거래처를 발굴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공 사장은 이들에게 “언제나 우리 무대는 세계”라고 강조한다. 1987년 입사 이후 30여 년의 직장생활 중 절반 이상을 해외 건설장비시장 개척에 매달려온 그였기에 누구보다 설득력 있다는 평가다.

첫 해외 근무지는 1992년 미국 시카고 지사. 당시 시카고는 지사장을 포함해 세 명이 근무하던 취약지였다. 현대건설기계(당시 현대중공업)가 미국 전역에 판매한 건설기계는 연간 30대에 불과했다. 당시 캐터필러가 주름잡던 미국 시장은 한국 기업에 완전히 불모지였다.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죠. 딜러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제품을 한번 보여주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파견근무를 통해 총 7년간 ‘시카고 영업맨’으로 활약하면서 현대의 위상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금은 약 70개의 딜러망을 확보해 연간 3000여 대의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공 사장의 다음 목적지는 2007년 인도였다. 뭄바이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푸네라는 황무지에 현지 공장을 세우는 임무를 맡았다. 수도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2년여에 걸쳐 공장을 지은 뒤 초기 운영 실무를 맡아 3년6개월을 현지에서 보냈다. 2011년 귀국해 임원이 된 그는 2013년 인도 법인장으로 다시 3년 여정에 올라 시장 공략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대건설기계의 인도시장 점유율은 17%로 현지 합작회사 타타히타치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도 지난 3분기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4% 늘어난 53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오랜 세월 가난과 질병에 시달려온 인도 사람은 좀처럼 외부인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던히 애쓴 게 주효한 것 같습니다.”

30년 외길 첫 CEO

공 사장은 현대중공업 내 건설장비사업본부에 입사해 한 번도 이 사업부를 떠나지 않은 인물이다. 조선이 주력인 현대중공업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건설기계 직원에게는 롤모델이 되는 존재다. 비주류의 서러움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1987년 부푼 꿈을 안고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공 사장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사표를 만지작거렸다. “조선회사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생각했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적이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첫 직장생활의 크고 작은 재미에 차츰 빠져들고 업무도 능숙해지면서 그는 사표를 접었다. “당신들은 우리 때문에 먹고사는 거야”라는 식의 조선 쪽 사람들이 보내오는 무언의 시선을 받으면서 “좋아!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결의를 동료들과 다졌다고 한다.

공 사장은 인터뷰 내내 밝고 자신감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다”고 답했다. 분사 이후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했다.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 “이제 우리 손으로 회사를 본격적으로 키워보자”는 강렬한 의지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 사장은 이런 임직원을 상대로 ‘점심 미팅’을 시작했다. 약속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원·대리 등 젊은 직원과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 시간의 대부분은 공 사장이 직원에게 회사 상황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회사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워하고 망설이던 직원들도 점차 말문을 트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 지난달 26일 국내 최초로 열린 중고 건설기계 경매 ‘현대건설기계 옥션’이다. 한 젊은 직원이 공 사장에게 제시한 ‘밥상머리 아이디어’는 하루짜리 행사를 열어 150여 대 장비를 완판하며 대박을 쳤다. 공 사장은 “사업 계획서라는 딱딱한 형식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과감히 채택해 전통의 틀을 깨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현대건설기계인상’도 신설했다. 최우수 직원에게는 5000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좋은 아이디어와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겠다고 한다.

국내외 판매 ‘수직 상승’

조직 분위기가 바뀌자 실적도 덩달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현대건설기계의 올초 사업 목표는 매출 2조4000억원이었다. 지난해 2조2120억원을 다소 웃도는 수준이다. 공 사장은 분사 이후 이 목표를 3조원으로 수정했다. 다소 무리한 목표라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왔지만 그대로 밀어붙였다. “세계적으로 건설기계 주문이 늘어나는 상황을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올해 이 회사 매출은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 사장은 국내 대리점을 대형화하는 등 기존 판매 틀도 과감히 바꿨다. 경쟁사에 비해 다소 부족한 유통망도 확충했다. 중고 건설기계 경매 같은 새로운 시도로 브랜드 인지도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갔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올해 현대건설기계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상승한 36% 수준으로 올라섰다. 특히 지난 10월까지 약 3000대의 굴삭기를 판매하며 작년 연간 실적(2105대)을 넘어섰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휘몰아친 중국 시장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과 베이징 남쪽 허베이성 슝안신도시 건설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공격적 영업 기회로 활용해 지난해보다 두 배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베트남 미얀마 러시아 등 9개 국가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렸다.

2018년을 앞두고 공 사장은 새로운 성장 목표를 가다듬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성장 발판을 확실하게 다진 뒤 2020년부터 매출을 매년 1조원 이상씩 늘려간다는 것이다. “결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외시장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확실하게 승부를 볼 겁니다.”
[CEO 탐구]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사장 "해외가 답"…건설장비 '수출 불모지' 개척 30년
"고객을 왕처럼"…24시간 내 굴삭기 수리 '하이테크팀' 신설
'영업통 CEO'답게 변화 주도


“고객을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지난 5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현대건설기계 출범식’에 참석한 공기영 사장은 전시된 대형 굴삭기 전면에 하얀색 펜으로 이 같은 글귀(사진)를 새겼다. 그는 “현대중공업이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나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가짐”이라며 웃어 보였다. 격조있는(?) 문구를 기대한 참석자들은 “영업통인 공 사장만 쓸 수 있는 문구”라며 “앞으로 이 회사가 어떻게 변화할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공 사장의 ‘고객중심’ 철학은 곧장 반영됐다. 24시간 고객을 응대하는 ‘하이테크팀’이 대표적이다. 공 사장은 “건설 현장에서 예기치 않은 고장이 발생하면 작업자 일당에 바로 타격을 준다”며 “고장난 굴삭기를 24시간 안에 고쳐 고객에게 인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비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건설기계 수명은 5~6년가량이다. 보통 쓰던 기계를 중고로 매각하고 새 장비를 구매한다. 신속·정확한 수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고객의 재구매율은 현격히 떨어진다. 현대건설기계가 사후서비스(AS)를 강화하기 위해 첨단 계측장비를 활용한 하이테크팀을 전국적으로 가동한 이유다. 공 사장은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최첨단 계측 장비를 탑재한 종합진단차량 5대도 자체 개발했다. 중고 장비를 빠르게 매각하고 새 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중고유통센터도 신설했다. 공 사장은 “고객으로부터 현대의 서비스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때 가장 뿌듯하다”며 “고객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사장 프로필

△1962년 경남 함안 출생 △1981년 마산고 졸업 △1985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업 △1987년 현대중공업 입사 △2011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사업본부 해외영업 담당 △2015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사업본부 생산·구매부문장 △2016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사업본부 사업대표 △2017년 4월 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부사장 △2017년 11월 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사장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