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냐 우정이냐,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가장 논쟁적 서사 테마다. 대개는 사랑의 힘이 더 세며 우정은 버겁게 버티다 굴복하지 않던가. 여기는 서아시아 실론 섬. 노예의 신분에서 브라만(Brahman) 계급의 여사제로 등극한 레일라(Leïla). 진정성 있는 기도와 아름다운 노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그녀의 임무는 어부들이 진주조개를 캘 때 노동요를 부르는 것.어부 나디르(Nadir)와 쥐르가(Zurga)는 친구 사이로, 쥐르가는 특히 족장(族長)이다. 둘은 레일라를 동시에 사랑한다. 그러나 우정에 금이 갈까봐 마음을 안 주기로 서약했는데 오랜 항해 끝에 귀향한 나디르가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는 맹세를 깬다. 비제 오페라 ‘진주조개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1863)’에 나오는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Je crois entendre encore)’이 나오는 지점이다.“아직도 들리는 것만 같네 / 종려나무 가운데 숨어 살랑대는 / 그녀의 부드럽고 따스한 음성이 / 마치 비둘기의 노래 같다오 / 오 황홀한 밤이여, 성스러운 환희여 / 오 매혹적인 추억이여, 미칠듯한 광기여, 달콤한 꿈이여 / 반짝이는 별빛을 보면 그녀가 보이는 것만 같네 / 저녁에 부는 포근한 미풍에 / 아름다운 베일이 감추어진 그녀의 모습이”프랑스 아리아는 남달리 불러야 한다. 추구하는 가치는 바로 élégance(엘레강스)와 raffinement(라피느망), 즉 우아함과 세련됨이다. 오트콩트르(haute-contre) 창법이라는 게 있다. 하이 카운터(high counter). 즉 고음에서 소리를 내지르지 않고 머금은 채 연주하는 테크닉이다. 달밤에 남국(南國)에서 사랑에 빠진 청년이 부르는 노래는 아련하고 몽환적이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오트콩트르 식으로 불
톨스토이는 <고백록>(1882)을 집필하기 바로 전 시인 페트에게 쓴 편지에서 “엄청난 더위와 목욕, 그리고 과일이 나를 지적으로 안일한 상태로 이끌었다. 나는 두 달 동안 손에 전혀 잉크를 묻히지 않았고, 사상으로 머리를 더럽히지 않았다. 올해처럼 이 세상을 멋지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잠시 멈춰 서서 그저 감탄하며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무언가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했다. 작가에게는 생명 가득한 세계에 대한 환희와 도취가 있었다. 자연 일부로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고 무덤에 묻히며 그 위에는 풀이 자라나는 현상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웅장하고 적극적인 생의 긍정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서사시적 세계는 개체의 죽음 앞에서 공포에 직면하며, 선악의 피안에서 떠내려와 죄의식으로 고통받기 시작한다.말의 일생1886년 발표된 <홀스토메르>의 부제는 “어느 말의 이야기”이다. 늙고 병든 거세마 홀스토메르를 한 무리의 말들이 업신여기며 폭력을 가한다. 그러다 그 거세마의 이력을 아는 암말 뱌자푸리하가 그가 누구인지를 대략 설명하자 무리는 비로소 홀스토메르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홀스토메르(보폭이 크다는 뜻을 지닌 이름)는 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순종 종마였지만 품종 결함인(혹은 그렇게 여겨지는) 흰 반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매우 빠르지만 2급 말로 취급됐다. 어느 날 그가 어느 암말과 사랑에 빠지자 주인인 백작은 홀스토메르를 거세해 버렸다. 홀스토메르는 마구간 관리인에게 주어졌고, 나중에 그 관리인은 자기 말이 백작의 말보다 빠르다는 사실에 겁
나는 기다란 회색의 직육면체 앞에서 가능한 모든 종류의 양가적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직육면체는 부유하려는 듯 내려앉았고, 친숙하면서 낯설었으며, 야성적이며 따스했다. 그런 순간에는 손에 든 기계로 그 모든 걸 담아내는, 결정적 순간을 말한 전설의 사진가처럼 한 장의 이미지에 프레임 밖의 전과 후를 포착해 내는 능력이 내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과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인다. 때때로 어떠한 대상으로부터 포착해야 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잔상에 더 가깝다. 한 장에 몇 개의 점을 저장하든 초당 몇 장을 저장하든 간에 그걸 담아낼 순 없다. 아주 천천히 지각하기. 그것들이 스스로 꿈틀거릴 때까지 기다리기, 성급히 집어 올리려다간 병 속의 방아깨비처럼 움직임을 멈출 것이므로. 그 움직임이 스스로 형태와 구조를 갖출 때까지 기다리기. 그렇게 본 것을 다시 구조화하기.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 안의 공간을 마주하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머릿속 풍경이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KAFKA/미궁의 악몽>(1991)에 나오는 수많은 서랍장으로 가득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