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 간 디자인 특허 소송의 손해 배상액을 재산정하는 재판이 시작된다. 지난해 말 미국 연방대법원이 삼성에 부과된 특허 침해 배상액 3억9900만달러(약 4502억원)가 과도하다며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낸 이후 10개월여 만이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재판을 통해 배상액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 vs 애플 특허전 새 라운드…배상금 대폭 줄 듯
23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22일 “삼성전자와 애플의 배상액 재산정과 관련한 새로운 재판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둥근 모서리 △화면에 베젤(테두리)을 덧붙인 디자인 △격자무늬 아이콘 배열 등 애플의 디자인 특허 3건을 침해한 데 대한 배상액 3억9900만달러가 적정한지 여부를 다시 따져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 법정 다툼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은 당시 삼성전자가 아이폰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삼성전자에 9억30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삼성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에서는 배상액이 5억4800만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디자인 관련 배상액 3억9900만달러가 과도하다며 삼성전자는 다시 연방대법원에 상고를 결정했다. 일부 디자인에서 특허 침해가 발생했는데 제조품(스마트폰) 전체의 가치가 침해받은 것으로 판단해 배상액이 산정된 것을 문제 삼았다.

미국 특허법 289조에 따르면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비슷한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익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전체 이익을 배상하도록 한 ‘제조품’의 범위다. 그동안 제조품은 완제품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디자인 특허만 침해했기 때문에 완제품이 아닌 부품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삼성전자의 배상액은 과도하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파기 환송했다. 당시 대법관 8명은 “특허 침해에 따른 피해는 기기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서만 있었다”고 판단했다.

6년 넘게 이어져온 두 회사의 법정 다툼이 돌고 돌아 다시 처음 재판이 시작된 새너제이지방법원으로 온 것이다. 루시 고 판사는 삼성이 침해한 애플 특허가 갤럭시폰 판매 수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판단해 손해 배상액을 다시 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들은 새로운 재판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에 또 다른 기회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삼성은 기뻐하고, 애플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니카는 “삼성과 애플의 지난 6년 반 시간이 ‘리셋’됐다”며 “삼성은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고 보도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