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건 나중에 해도 된다
남에게 피해줄 일, 욕먹을 일은 애당초 하지 말라
글로벌 기업과 과감한 M&A…OCI 재계 24위·자산 12조로
2006년 '태양광 뚝심'으로 폴리실리콘 생산 글로벌 3위
경총 회장 3연임…경영계 버팀목
노사화합 강조 파업 없는 회사로
◆화학·에너지산업의 기수
고인의 삶에는 한국 화학산업의 성장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회장은 1968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70년 동양화학에 전무로 입사했다. 해외유학 시절 쌓은 폭 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국과 독일 등 해외 기업과의 합작사를 설립해 화학산업 선진화에 앞장섰다. 프랑스 롱프랑사와 합작으로 화이트 카본사업을 하는 한불화학(1975년)을 시작으로 미국 다이아몬드 샴록사와 탄산칼륨사업을 하는 한국카리화학(현 유니드·1980년), 독일 데구사와 자동차 매연 저감 촉매를 생산하는 오덱(1985년), 일본 스미토모화학과 반도체 약품을 생산하는 동우반도체약품(1991년) 등을 잇따라 설립해 신발 TV 자동차 등 한국 핵심 수출품목에 화학제품을 공급했다. 2001년엔 제철화학과 제철유화를 인수해 동양제철화학으로 사명을 바꾸고 석유·석탄화학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고인은 화학 분야뿐만 아니라 한국 태양광산업을 개척한 기업가로 평가받는다. OCI 주력사업인 폴리실리콘 생산은 2006년 이 회장의 뚝심으로 시작됐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 전지의 기초소재다. OCI는 2008년부터 상업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시작해 현재 글로벌 3위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 이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은 2009년 사명을 동양제철화학에서 OCI로 바꿨다. 그는 ‘그린에너지와 화학산업의 세계적 리더 기업’이라는 비전을 선포하고 화학기업에서 에너지기업으로의 변신을 추진해왔다. 폴리실리콘사업에 이어 태양광발전사업에 도전해 2012년 400MW 규모의 미국 알라모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수주해 지난해 완공했다.
에너지·화학 한우물에 집중해온 이 회장은 ‘준법·정도’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임직원에게 “남에게 피해 줄 일, 욕먹을 일은 애당초 하지 말라. 돈을 버는 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당부했다. 그와 함께 회사를 이끌어온 전문경영인 백우석 OCI 부회장은 “고인은 항상 한국 화학산업과 우리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해왔다”며 “최근까지도 아침 일찍 출근해 회사 경영을 챙기던 회장님이 갑자기 떠나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사화합에 선도적 역할
이 회장은 재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던 2009년엔 복수노조·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제도) 등이 포함된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당시 야당인 민주당을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회사 경영에서도 합리적 노사 관계 정립과 노사화합을 강조하며 OCI를 노사화합 기업으로 이끌었다.
고인은 경영 활동 이외에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쇼트트랙 등 한국 빙상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경자 여사와 장남 이우현 OCI 사장, 차남 이우정 넥솔론 관리인, 장녀 이지현 OCI미술관 부관장이 있다.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과 이화영 유니드 회장이 동생이다. 이 회장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다. 25일 오전 8시 영결식 후 경기 동두천시 예례원 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