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롱기로 할까? 네스프레소가 더 낫지 않아?”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이 하는 흔한 대화입니다. 커피가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커피 머신은 필수 혼수품이 된 지 꽤 됐죠.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장래 희망이 바리스타인 것처럼 에스프레소 기계 브랜드를 수없이 알아보고, 그라인더에 템퍼(에스프레소 가루를 눌러주는 기구)까지 기웃거렸습니다. 결국 해외 직구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올리브색 드롱기 에스프레소 머신을요.

엄청난 배송비에 웃돈까지 줘서일까. 바라만 봐도 뿌듯했습니다. 식탁 가운데 놓고 신줏단지 모시듯 매일 닦고 광을 냈죠. 처음엔 스팀기로 라테도 만들어보고, 에스프레소도 마음껏 내렸습니다. 계절이 몇 번 지나자 애정이 식더군요. 일단 청소가 귀찮았습니다. 유럽에서 먼 길을 달려온 그 아이는 이제 서랍장을 거쳐 창고 신세가 됐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깔때기 모양의 핸드드립 기구와 종이 필터. 이 단순하고 싸고, 작은 기구는 몇 년째 묵묵히 모닝커피를 내립니다. 여행길에도 가방 한구석을 차지하는 필수품이 됐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커피 핸드드립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핸드드립 기구의 3대 회사는 하리오, 칼리타, 고노입니다. 모두 일본 브랜드지요.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고 합니다. 핸드드립 방식은 1908년 독일의 주부 멜리타 벤츠가 양철컵의 바닥에 여러 구멍을 뚫은 뒤 종이를 그 구멍에 대고 커피를 추출한 게 최초라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에 밀려 잊혀지고 있었죠. 엉뚱하게 이후 일본에서 꽃피우게 됐습니다. 다도(茶道)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선 커피도 차처럼 천천히 내려 깔끔하고 담백하게 마시는 방식이 인기를 끌었고, 핸드드립이 제격이었습니다. 기구 모양도 다르고, 필터도 종이 융 금속 등으로 다양하지요. 이들이 개발하고 발명한 기구들은 원두를 전 세계 집집마다 실어나르는 커피산업의 최고 발명품이 됐습니다.

핸드드립의 매력은 간편한 것 외에도 또 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기계에서 균질한 커피 원액이 나오지만, 핸드드립은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냅니다. 원두의 종류와 분쇄한 크기, 물의 온도와 커피 내리는 시간 등에 따라 개성이 드러나죠. 똑같은 커피 맛에 질린 사람들이 나만의 스페셜티 커피를 찾아 핸드드립 커피바를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창고 문을 열 때마다 쓸쓸하게 갇혀 있는 드롱기를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쯧쯧, 그거 얼마나 쓰는지 한번 보자”던 엄마의 얼굴. 네, 엄마는 늘 옳습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