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세균 국회의장은 “탈(脫)원전 같은 중요한 정책은 국회와 의논하는 게 맞다”며 “인내심을 갖고 민주적 절차를 잘 챙기고 소통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지난 16일 국회 의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국회를 거치다 보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것 같은데 속도를 내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정 의장은 문재인 정부 100일 평가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이 주는 점수가 내가 주는 점수보다 후하다”며 “인사와 안보 문제 등에서 더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개헌의 시대정신은 분권으로 대통령의 권한 축소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할지, 아니면 국회가 선출할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의장에 취임한 지 1년2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성과와 함께 과제도 있을 텐데요.

“작년에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회가 중심을 잡고 잘 관리한 것이 그래도 가장 큰 보람입니다. 국회 의석 구도 등을 보면 탄핵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국회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서 잘 판단했습니다. 국가의 중심을 잘 잡아준 것이라 평가합니다. 민생을 챙기는 것과 개헌을 성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입니다.”

▷정부 형태 등을 놓고 여야 간 이견이 큰데 개헌이 성공할 것으로 보십니까.

“국회의원과 국민 전문가 모두 개헌에 압도적으로 찬성합니다. 다만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각론은 제각각입니다. 핵심은 권력구조와 선거구제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개헌의 성패가 결정될 것입니다. 국민이 내각제에 부정적이어서 내각제는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야 3당은 분권형 대통령제로 의견을 모은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4년 대통령 중임제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인데요.

“모든 정파가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권한을 지금처럼 놔둔 채 4년 중임제로 가면 개악이 됩니다. 개헌의 시대정신은 분권입니다. 대통령의 권력과 입법 행정 사법부의 수평적 분권이 이뤄져야 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직적 분권도 필요합니다. 수평적·수직적 분권이 이뤄져 대통령 권력이 축소되면 단임이든 중임이든 의미가 없어집니다. 어느 당도 대통령 권력을 그대로 둔 채 4년 중임제를 하자는 입장이 아닌 만큼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 권한을 어느 정도 축소하는 게 의미있는 개헌이 되기 위한 마지노선입니까.

“예를 들어 감사원을 독립기관화하고 대통령이 가진 인사권을 조정하고, 지방에 재정권과 인사권, 조례 제정권을 확대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파나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매몰돼선 안 됩니다. 오로지 국가의 장래를 위한 논의가 돼야 합니다. 대통령 분권에 합의하면 정부 형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결국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할지, 아니면 국회가 선출할지가 핵심입니다.”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과 맞물려 있는데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뭐라 보십니까.

“인구가 적은 지방(농촌)은 소선거구,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대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하는 혼합형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야가 개헌안 합의에 실패하면 대통령이 나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으로 가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입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낼 수 있지만 어차피 국회를 거쳐야 합니다. 대통령이 개헌안 마련에 참여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국회 개헌특위에 의견을 내는 게 좋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국민으로부터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봐야지요. 내 평가보다 국민의 평가가 더 후합니다. 그러나 인사와 안보 문제에서 좀 더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탈원전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을 놓고 논란이 커진 상황입니다.

“정권이 교체됐으면 당연히 변화가 필요합니다. 정권교체가 됐는데 국민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개혁 정책 추진이 필요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나 충분한 소통이 이뤄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원전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원전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것 아닌가요. 다만 불필요한 갈등이나 정책 혼선 없이 추진해줬으면 합니다. 탈원전같이 중요한 문제는 국회와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논한다고 해서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도 크지 않아요. 속도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하는데 속도를 내다 보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인내심을 갖고 소통하면서 민주적인 절차를 잘 챙기는 게 오히려 더 빠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도 국회로 넘겼으면 좀 더 매끄럽게 풀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 비정규직 문제를 잘 푼 것과는 달리 인천공항공사는 이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회 환경미화원의 정규직화는 잘 준비한 결과입니다. 임금단체협약을 다 체결한 뒤 협상을 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뒤 협상에 들어가면 갑과 을이 바뀌게 됩니다. 협상이 잘 될 리 없죠. 과거 기업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완전히 협상을 다 해놓고 정규직 전환을 한 것입니다. 인천공항은 먼저 정규직화 선언을 하고 협상에 들어간 데 따른 진통으로 보입니다.”

▷법인세 인상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법인세 인상이 아니라 정상화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법인세를 하향 조정하는 국제적 흐름이 있어 고민입니다. 다만 법인세를 상향 조정해도 국제 기준에 비해서 우리가 높지 않습니다. 물론 세계적 흐름도 잘 주시해야겠죠. 몇조원 이익을 내는 대기업이 1000억원 세금을 더 낸다고 타격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려운 중견기업이 문제입니다. 기업과 제대로 소통하고 국제적 흐름을 감안해서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첨예하게 대립하지 말고 조금 더 부드럽게 추진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의원입법이 남발되는 등 국회 비효율성 문제가 여전합니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6700여 건입니다. 그래서 그걸 줄이기 위해 압박하고 있어요. 과거 시민단체 등에서 의원 평가를 발의 건수 등 정량 평가를 진행해서 그런 경향이 심해졌습니다. 이런 풍토를 바꾸기 위해선 언론과 시민단체도 정성평가를 해야 합니다.”

▷여권에서 국회법(선진화법) 개정 얘기도 나옵니다.

“현재는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도 안건조정제도를 걸어버리면 180일 동안 아무것도 못 합니다. 말이 안 됩니다. 3분의 2면 개헌도 하고 탄핵도 할 수 있는 숫자 아닙니까. 선진화법이 동물 국회를 면한 데는 기여를 했죠. 존치시키면서 현실적으로 비능률을 제거하는 조정이 필요합니다. 정파 이해관계 때문에 야당에서 반대한다면 법을 개정한 뒤 21대 국회부터 시행하면 됩니다.”

▷최근 이란과 파키스탄, 미얀마 등을 방문했는데 성과가 있었습니까.

“그동안 우리나라와 정치적으로 소원했던 나라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면서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보람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기대치가 높습니다. 미얀마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가서 분위기를 바꿔주면 우리 기업들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지난번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방문으로 현지 고속철 수주전에서 우리가 일본과 중국, 유럽에 밀리다 지금은 해볼 만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경제와 외교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핵 대응 방안으로 보수 야당에서 전술핵 배치 등을 주장하는데요.

“북핵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제재는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지,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전술핵 재배치 등 다양한 얘기가 나오면 정부의 협상력이 커질 것입니다.”

■ 정세균 의장은

△1950년 전북 진안 출생 △전주 신흥고 △고려대 법학과(총학생회장) 졸업 △미국 페퍼다인대학원 경영학 석사, 경희대 경영학 박사 △쌍용그룹 상무 △제15·16·17·18·19·20대 의원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열린우리당 의장 △산업자원부 장관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대표 △국회의장

정리=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