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고국 무대 서는 소프라노 이하영
“17년 만에 운명처럼 한국 무대에 서게 돼 벅차고 감격스럽습니다. 한국적 색채를 담고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울고 웃는 비올레타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주역 가수로 활동하는 소프라노 이하영(사진)이 오는 26~27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리는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동백꽃아가씨’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무대에 오른다. 고국 무대에 서는 것은 2000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윤이상 오페라 ‘심청’의 타이틀롤을 맡은 이후 17년 만이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연습동에서 리허설이 한창인 그를 만났다.

◆“황진이 같은 비올레타 보여줄 것”

이하영은 오페라 데뷔 무대인 ‘심청’ 공연을 마친 뒤 돌연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세계 최정상급 오페라극장인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재능 있는 신인 성악가를 발탁해 육성하는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뽑혔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이후 그는 로열오페라하우스, 독일 드레스덴젬퍼오퍼, 오스트리아 빈폴크스오퍼 등 유럽 정상의 무대에서 다양한 오페라 작품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가 일부러 한국 무대를 찾지 않은 건 아니었다. 국내 무대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졌다. “이상하게 매번 엇갈렸어요. 2014년에는 국립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하려고 했는데 출산이 겹쳤고, 이후에도 여러 번 일정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친분이 두터운 홍혜경 선생님의 비올레타 출연이 갑자기 취소된 데다 공연 지휘를 맡은 파트릭 푸흐니에와 인연이 있어 기회가 닿았습니다. 운명적으로 한국 무대에 오르게 된 셈입니다.”

‘동백꽃아가씨’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았다. 이번 공연의 비올레타는 한국적 색채를 가미한 작품인 만큼 한국적인 여인상을 그려내야 한다. 붉은 색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선다. 극의 배경을 조선 정조시대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17년간 줄곧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며 서양인의 목소리와 몸짓에 맞춰온 그가 한국의 정서를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아무리 외국에 오래 나가 있었어도 한국인의 피는 못 속이는 것 같아요. 발레처럼 춤을 추다가도 한국 무용을 하라고 하면 황진이처럼 곧바로 손동작이 나와요. 그렇다고 해서 ‘한국적’이란 것에만 얽매이지 않으려고 해요. 자연스럽게 역할에 풍덩 빠져들고 싶습니다.”

◆“무대에서 눈물 흠뻑 쏟겠다”

그는 그동안 극중 청년 알프레도와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죽음을 맞는 비운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으로 60회 이상 무대에 섰다. ‘이하영의 비올레타’에는 또 다른 특색이 있다. 어떤 비올레타보다 무대에서 감정을 과감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슬픈 장면에서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성악가나 울지 못하게 하는 연출가가 많아요. 소리도 중요한 건 맞지만 관객이 극에 빠져들게 하려면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눈물을 흠뻑 쏟아내려고요.”

17년 전 데뷔 당시와 지금의 국내 오페라 공연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때만 해도 오페라를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 관객층이 넓어지고 두터워졌어요. 정말 기쁜 일입니다. 더욱 정교한 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오페라 전문 인력이 늘어난다면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자주 한국 무대에 오르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