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췌장이식 수술을 한 뒤 힘들어 중단할까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100건만 채우자는 목표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을 이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아산의학상 임상의학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외과교수(사진)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자를 살린다는 의사의 본분을 지킨 결과”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1992년 국내 첫 췌장이식 수술을 한 의사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350건의 췌장이식 수술을 했다. 췌장은 인슐린을 만들고 소화 기능을 돕는 기관이다. 췌장이식 수술은 당뇨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한 교수가 나서기 전까지 국내 환자들은 이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던 한 교수는 1986년 미국 미네소타대 병원에서 신장과 췌장이식 수술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 교수는 1990년 1월 뇌사자의 신장을 신부전증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뇌사자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기다. 수술 사실이 알려진 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한 교수는 “돈을 받고 뇌사자 가족과 환자를 연결한 것 아니냐며 검찰 조사도 받았다”고 했다. 얼마 뒤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수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1992년 국내 처음으로 뇌사자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그는 국내에서 뇌사자 장기이식 수술을 가장 많이 한 의사다. 그가 쓴 책은 13권, 논문만 355편이다.

평생을 이식외과 의사로 살아온 한 교수는 스스로를 ‘3D업종’ 종사자라고 한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틈만 나면 등산을 간다. 1주일에 3~4일은 병원에서 잠을 잘 정도다. 한 교수는 “힘든 삶을 지켜보던 자식들 모두 의사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처럼 바쁜 삶을 살지만 시간이 날 때면 ‘면역학’ 관련 책을 본다. 장기이식 환자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면역반응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식은 언제든 환자가 죽을 수 있는 수술”이라며 “외과에 새로 오는 의사들에게 백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 교수는 외교부 산하 의료지도자협의체(MLC) 의장도 맡고 있다. 은퇴한 의사들이 개발도상국 의사에게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재능기부 단체다. 그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는 학식과 경험 있는 그룹이 롤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여러 분야의 멘토들이 모인 리딩그룹이 더 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