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가 택한 메디프론…"치매·통증 신약 전문기업으로 도약"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2010년 바이오 벤처기업 메디프론으로부터 총 2억9000만달러(약 3000억원) 규모 치매 치료제 기술을 사들였다. 당시까지 국내 바이오산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었다. 메디프론이 개발한 기술은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가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뇌혈관장벽 안으로 옮기는 기능을 차단한다. 로슈는 이 기술을 가지고 전임상시험(동물실험)을 하고 있다.

김영호 메디프론 대표(사진)는 “초기 기술을 개발해 대형 제약사에 이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치매는 물론 통증 치료제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고 19일 말했다. 메디프론은 1999년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 이지우 서울대 약대 교수 등 과학자 6명이 함께 설립한 바이오 벤처기업 디지탈바이오텍을 모태로 한 회사다. 2006년 정보기술(IT) 유통 분야 코스닥 상장사인 레전드테크놀로지스를 통해 우회상장한 뒤 지금의 메디프론이 됐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원을 지낸 김 대표는 2002년 메디프론 연구소장으로 합류했다.

메디프론은 대웅제약과도 2008년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전임상을 끝마쳤다. 응집하는 베타아밀로이드를 녹여 뇌 밖으로 내보내는 기술이 핵심이다. 영국 제약사 엘런 등이 비슷한 기전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베타아밀로이드의 독성이 생긴 뒤 응집을 억제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작다. 김 대표는 “메디프론이 개발한 기술은 베타아밀로이드 독성이 생기기 전에 응집을 억제한다”며 “올해 안에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2상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메디프론이 집중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비(非)마약성 진통제다. 현재 진통제는 아편 성분의 모르핀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모르핀을 장기간 사용하면 중독 등 부작용이 있다. 일라이릴리와 같은 다국적 제약사가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에 나섰지만 임상 도중 이상 발열이 나타나 개발을 포기했다.

메디프론은 2005년 진통제 전문기업인 독일 그루넨탈에 총 기술료 4000만유로 규모로 기술을 수출했다. 2009년 영장류 전임상시험에서 이상 발열 등 독성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서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그루넨탈은 임상시험 1상을 앞두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까지 100억원의 기술료를 받았다”며 “개발 단계로 보면 비마약성 진통제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와 통증 분야 모두 아직 블루오션인 시장”이라며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고 강조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