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나온 476명 '자발적 퇴직'…임관 후 5~8년차 가장 많아
법조계·대기업 등으로 진로 바꿔…2015년 로스쿨 합격자 31명
총경 승진 '하늘의 별따기'…보직 변경 잦아 전문성 요원
국민 세금으로 양성했는데…우수인재 이탈은 뼈아픈 현실
경찰대 신입생 적합성 강화해야
B씨는 경찰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재작년 경찰 조직을 떠났다. 그는 “처음엔 법률 지식을 현업에서 활용하면 더 좋은 경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관료적인 분위기에서 내 소신을 주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나왔다”고 했다.
젊은 ‘엘리트 경찰관’들이 경찰복을 벗고 있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경찰대를 나와 막상 간부가 되고 나선 앞다퉈 민간기업으로 이직하고 있다. 경찰 조직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와 불투명한 인사 시스템, 경찰 위상 추락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임관 직후 ‘먹튀’ 심각
매년 경찰대 출신 110여명이 경위로 임관(任官)한다. 이들은 국가 장학금을 받은 대가로 6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하지만 매년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경찰 조직을 떠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10일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의무복무 미이행자는 2012년, 2013년 각각 13명 수준에서 2014년, 2015년 각각 22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엔 8월까지 18명에 달했다.
경찰대생 1명을 졸업시키려면 학비와 기숙사비 등 약 1억원의 세금이 들어간다. 의무복무 기간 중 퇴직하면 대학 시절 받은 지원금의 절반(약 4900만원)을 반납하도록 하고 있지만 퇴직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퇴직한 경찰대 출신 경찰 625명 중 476명(76.1%)이 스스로 그만뒀다. 젊은 간부의 퇴직이 두드러진다. 2014년에 임관한 경찰대 30기(116명) 중 이미 7명이 퇴직했다. 2004년 임관한 경찰대 20기생(113명) 중엔 25명이 조직을 떠났다. 이들보다 19년 선배인 1기생(111명)도 스스로 그만둔 경찰이 25명에 불과하다. 강 의원은 “임관 후 5~8년차가 가장 많이 퇴직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 세금을 들여 양성한 경찰 간부의 이직은 국가적으로도 뼈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인사팀’ 경찰대 출신 두각
법조인으로 변신하는 이들이 가장 많다. 2009년 로스쿨 도입으로 경찰대 출신 이탈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이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경찰대 출신 로스쿨 합격자는 2012년 7명에서 2013년 15명, 2014년 30명, 2015년 31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지난해엔 17명이 합격했다. 경찰대 출신 간부는 “과거에도 사법시험을 보려는 수요가 많았는데 로스쿨로 문턱이 낮아지면서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으로 옮기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에 자리 잡은 경찰대 출신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인사업무 등을 담당하는 강경훈 부사장(경찰대 2기)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강 부사장은 경감으로 일찌감치 퇴직해 삼성에서 승진을 거듭했다. 강 부사장을 시작으로 경찰대 출신이 삼성에 줄줄이 영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부사장보다 한 기수 후배인 김사필 삼성전자 전무(경찰대 3기)는 인사 업무를 거쳐 현재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3년 전께엔 경찰대 18기 출신이 삼성전자 인사담당으로 이직했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대 출신이 삼성이 중시하는 노무 관리 업무 등에 탁월한 성과를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에도 경찰대 출신이 적지 않다. 조영석 CJ 부사장(전략지원실장)은 경찰대 5기 출신으로 대관 등을 담당한다. 김희석 한화 상무는 경찰대 2기 출신으로 법무담당이다. 경찰청 정보과장 등을 지낸 김두연 총경(경찰대 4기)은 지난해 AK홀딩스 상무로 이직했다. 그는 노사 부문 정보 업무를 오래 했다.
민간으로 이직한 전직 경찰 간부는 “경찰대 출신은 기업 내 기획실·비서실 등 핵심 부서에서 데려간다”며 “조직 생활이 체화돼 있고 정보수집이 빠른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총경 승진도 갈수록 어려워
경찰대는 고위 경찰 간부가 되는 지름길이었다. 입학이 어려운 만큼 자부심도 컸다. 올해 들어온 신입생 100명을 선발하는 데 전국에서 1만1364명이 몰렸다.
하지만 임관 후 경직된 문화와 다른 공무원 조직에 비해 낮은 대우로 실망하는 경찰관이 많다. 경찰 내 경정급 한 간부는 “최우수 성적의 학생들이 경찰이 됐지만 수사·경비·정보 모두 검찰 경호실 국가정보원의 하청 아니냐는 자조 섞인 한탄을 한다”고 말했다. 중견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경찰대 출신 변호사는 “경찰대 졸업 후 일선 서에서 일해 보니 계속 보직이 바뀌어 전문성을 키우기 힘들었다”며 “자기계발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승진 부담이 커진 점도 이직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인사가 적체되면서 ‘경찰서장’직에 해당하는 총경에 오르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체 경찰 중 공무원 4급에 해당하는 총경 비율은 0.5% 정도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승진에 유리한 보직을 맡기 위한 경찰관들의 ‘줄대기 경쟁’도 치열하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전직 경찰은 “매년 불투명한 승진과 어디로 발령날지 모르는 인사에 부담을 느껴 퇴직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수 인재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찰 내부구조의 문제가 크다”며 “의무복무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경찰대 신입생 선발에서 경찰 적합성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