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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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3월3일 서울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휴전된 지 만 3년이 안 돼 명동이라 해도 폐허나 다름없던 때였다. 주식이라는 개념도 낯설었던 시절, 상장사는 고작 12개에 불과했다. 중개인들이 호가를 내면 직원이 망치를 두드려 가격을 결정했다. 개장 첫해 주식거래 대금은 3억9000만원이었다. 하지만 61년이 지난 현재 한국 증시는 세계 거래소 가운데 거래대금 8위, 상장기업 수 9위, 시가총액 15위 규모(2016년 말 기준)로 성장했다. 상장기업 수는 2000여개, 시가총액은 약 1500조원에 이른다. 자본시장의 불모지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제는 신흥국에 거래 시스템을 수출하는 시장으로 발전했다. 그 중심에 한국거래소(KRX)가 있다.

한국 자본시장 61년사의 ‘산증인’

‘한국 자본시장의 심장’으로 불리는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파생상품시장 등 국내 주식 관련 거래를 총괄하며 기업공개와 상장 업무도 맡고 있다. 회사 주식뿐만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등을 상장시켰고 공정 거래가 이뤄지도록 시장 감시 역할도 담당한다.

거래소 역사는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와 다름없다. 1979년에는 서울 여의도로 본사를 옮겼다. 거래소를 따라 주요 증권사가 이전하면서 증권산업의 ‘여의도 시대’를 여는 데 한몫했다. 1988년에는 전산매매제도를 도입해 증권 매매의 효율성을 높여 국내 증시가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1996년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 요건을 충족하기 힘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도 증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코스닥시장을 개설했다. 기술이나 잠재력을 갖췄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벤처 기업들에 유동성이 공급됐다. 이 ‘인큐베이터’ 속에서 지금 증시를 이끌고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성장할 수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시련을 극복하고 2002년에는 ETF시장을 개장해 한국 증시 선진화에 기여했다. ETF는 특정 지수나 종목 포트폴리오를 추종하는 펀드를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선진국형 투자 수단이다. 2005년에는 서울의 증권거래소와 부산의 선물거래소를 합쳐 부산에 본사를 설립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동남아 우량 기업 상장 추진

최근 거래소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국내 자본시장의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대로 안주했다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안으로는 시장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해외 진출을 확대해 ‘금융 한류’를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 거래소들과 협력을 확대해 글로벌 선진시장으로 발돋움한다는 비전도 만들었다. 정찬우 거래소 이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세계 시장과의 연계·협력을 강화해 우리 시장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 우량 기업과 해외 주요국 시장 대표 금융상품의 국내 상장을 추진하고 국내 주력 상품의 해외 연계 거래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올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성장성이 높은 동남아 지역의 우량기업을 적극 발굴해 유치할 계획이다. 국내 투자은행(IB) 관계자들과 함께 현지 기업을 직접 방문해 상장 간담회를 열고 방문 컨설팅을 하며 상장 유치 활동을 펼친다. 국내 투자자에게 성장성 높은 해외 우량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해 투자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다.

하반기에는 싱가포르에 지점을 설립한다. 거래소가 해외 주요 거점에 임시 사무소를 운영한 적은 있지만 지점을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중국 베이징과 싱가포르에 임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거래소는 싱가포르 지점에 파견이나 장기 출장 방식으로 상주 인력을 두고 현지 인력도 채용할 계획이다. 최태주 거래소 해외사업마케팅팀장은 “아시아 대표 금융허브인 싱가포르는 IB 헤지펀드 등 다양한 글로벌 기관투자가가 상주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며 “거래소 글로벌 사업의 아시아 거점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자본시장 인프라 수출

거래소는 또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도입 등 정보기술(IT)을 내세워 ‘금융 한류’ 확산에 나서고 있다.

거래소는 2007년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태국 등 8개국에 14개 IT 시스템을 수출했다. 작년 10월에는 베트남에서 호찌민거래소와 ‘베트남 차세대 증권시장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베트남 정부 자금으로 증권거래소 두 곳(호찌민·하노이)과 예탁기관에 필요한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거래소는 코스콤과 협력해 국내 시장의 차세대 시스템을 기반으로 현지에서 2년에 걸쳐 제반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거래소는 2011년과 2012년 각각 라오스거래소와 캄보디아거래소를 해당국 정부와 합작 형태로 개설했다. 라오스는 지분 49%, 캄보디아는 45%를 보유하고 있다. 라오스거래소에는 라오스 최대 수력발전회사 등 5개 국영 및 민간기업이 상장해 있다. 캄보디아거래소는 프놈펜항만공사(PPAP) 등 4개사를 유치했다.

두 곳 모두 증권시장 도입 초기 단계로 아직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IT 도입과 상장사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상장 희망 기업 대상 컨설팅 등을 통해 시장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거래소는 중동, 남미 등 다른 지역 진출도 적극 검토 중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의 거래소에 지분 투자를 해 한국형 자본시장 인프라 수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신홍희 거래소 국제사업단장은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증시 IT 솔루션 수출 시장에서 한국거래소의 인지도와 위상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