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여대생의 '꿈 사다리' 된 성균 한글백일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어릴 땐 절대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님과 다름없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게 내 목표다. 내가 부모님에게서 그토록 달라지고자 했던 게 이제 공통점이 됐다.”
카자흐스탄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 4학년 조 옐레나 씨(20)가 지난 10일 이 대학에서 열린 ‘제8회 중앙아시아 성균 한글백일장’(사진)에 참가해 쓴 글이다. ‘다름’을 주제로 열린 이 백일장에서 옐레나씨는 한때 부모님과 달라지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닮고 싶어졌다는 자신의 마음 변화를 한글로 풀어냈다. 옐레나씨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예쁜 옷과 컴퓨터, 휴대폰을 갖고 싶었는데 사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야속했다”면서도 “어른이 된 지금은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썼다. 옐레나의 마음을 돌린 건 가난을 이겨내려 온갖 일을 다 맡아 하다 심장병에 걸려 쓰러진 아버지였다. 옐레나씨는 “기적같이 일어난 아버지가 쉬지도 않고 가족을 위해 다시 일터로 향하는 모습에 울컥했다”고 회상하며 “이제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행복한 가족을 만들 것”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3개국에서 36명이 참가한 가운데 옐레나씨가 최우등인 금상을 수상했다. 금상을 받고도 심장이 약한 아버지가 크게 놀랄 것을 우려해 수상 직후 집에 전화 걸기를 망설여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옐레나씨의 지도교수는 “옐레나는 부모님의 건강과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이 깊은 성숙한 학생”이라며 “집에서 찰떡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파는 고된 삶을 살면서도 옐레나를 밝고 따뜻한 딸로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옐레나씨는 시상식에서 “한국 드라마와 노래, 카자흐에 진출해 있는 삼성과 LG 등을 보고 한글에 관심을 두게 됐다”며 “앞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나 기업 경영을 공부해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교류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옐레나씨는 고(故) 김소운 작가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과 고 현진건 작가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즐겨 읽는 ‘문학 소녀’다. 한국어로 된 문학 작품을 자주 읽으며 한국어 글짓기 실력을 높이고, 전공수업이 끝난 뒤에도 매일 3~4시간씩 혼자 글을 썼다고 한다.
은상은 카자흐국립대에 재학중인 우스마노바 자미라씨(21)가 받았다. 자미라씨는 “행복은 장소가 아니라 방향이다.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가려는 방향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을 더 흥미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키르기스스탄-한국대에 다니는 베이센베코바 아이잔 씨(18)는 “사람마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고 같은 민족으로 태어나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내 이름은 흔한 아이잔이지만 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다름’에 대한 생각을 펼쳐 3위 동상을 수상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예외적으로 ‘특별상’ 수상자가 나왔다. 세대 간 차이를 다룬 카자흐스탄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 학생 무하멧칸 살타나트 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 부모 세대는 사회주의 세대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세대”라며 “세대 간 격차가 크고 서로 이해하기 힘든 정서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살타나트 씨는 “그렇지만 부모님은 ‘우리 때는 열심히 노력해도 얻는 것이 모두 똑같았지만 너희 세대는 다르다. 노력하면 할수록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세대”라고 썼다. 유홍준 학부대학장이 심사위원장을, 성재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회위원장을 맡고 이석규 국제처장이 심사에 참여했다.
성균관대는 매년 동남아시아 중국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한글 백일장을 열고 있다. 한류 문화를 확산하고 한국과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성균관대 동문인 김홍덕 이래CS 사장이 해마다 거액을 쾌척해 행사 진행을 돕고 있다. 신한카드와 신한파이낸스도 후원했다.
성균관대는 대회 입상자들에게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과정 전액 장학금 혜택을 준다. 1회 수상자 아이다로바 아이게림 씨는 성균관대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카자흐스탄 정부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2회 수상자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신이리나 씨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해마다 꾸준히 배출하는 수상자들이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국제교류 협력의 가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호종 카자흐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 객원교수는 “성균 한글백일장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한국어경시대회로 인정받고 있다”며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현지 학생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기도 해 현지 한국기업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석규 성균관대 국제처장은 “외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언어로 여기고 세밀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다”며 “일부 참가자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카자흐스탄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 4학년 조 옐레나 씨(20)가 지난 10일 이 대학에서 열린 ‘제8회 중앙아시아 성균 한글백일장’(사진)에 참가해 쓴 글이다. ‘다름’을 주제로 열린 이 백일장에서 옐레나씨는 한때 부모님과 달라지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닮고 싶어졌다는 자신의 마음 변화를 한글로 풀어냈다. 옐레나씨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예쁜 옷과 컴퓨터, 휴대폰을 갖고 싶었는데 사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야속했다”면서도 “어른이 된 지금은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썼다. 옐레나의 마음을 돌린 건 가난을 이겨내려 온갖 일을 다 맡아 하다 심장병에 걸려 쓰러진 아버지였다. 옐레나씨는 “기적같이 일어난 아버지가 쉬지도 않고 가족을 위해 다시 일터로 향하는 모습에 울컥했다”고 회상하며 “이제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행복한 가족을 만들 것”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3개국에서 36명이 참가한 가운데 옐레나씨가 최우등인 금상을 수상했다. 금상을 받고도 심장이 약한 아버지가 크게 놀랄 것을 우려해 수상 직후 집에 전화 걸기를 망설여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옐레나씨의 지도교수는 “옐레나는 부모님의 건강과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이 깊은 성숙한 학생”이라며 “집에서 찰떡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파는 고된 삶을 살면서도 옐레나를 밝고 따뜻한 딸로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옐레나씨는 시상식에서 “한국 드라마와 노래, 카자흐에 진출해 있는 삼성과 LG 등을 보고 한글에 관심을 두게 됐다”며 “앞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나 기업 경영을 공부해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교류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옐레나씨는 고(故) 김소운 작가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과 고 현진건 작가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즐겨 읽는 ‘문학 소녀’다. 한국어로 된 문학 작품을 자주 읽으며 한국어 글짓기 실력을 높이고, 전공수업이 끝난 뒤에도 매일 3~4시간씩 혼자 글을 썼다고 한다.
은상은 카자흐국립대에 재학중인 우스마노바 자미라씨(21)가 받았다. 자미라씨는 “행복은 장소가 아니라 방향이다.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가려는 방향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을 더 흥미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키르기스스탄-한국대에 다니는 베이센베코바 아이잔 씨(18)는 “사람마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이고 같은 민족으로 태어나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내 이름은 흔한 아이잔이지만 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다름’에 대한 생각을 펼쳐 3위 동상을 수상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예외적으로 ‘특별상’ 수상자가 나왔다. 세대 간 차이를 다룬 카자흐스탄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학 학생 무하멧칸 살타나트 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 부모 세대는 사회주의 세대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세대”라며 “세대 간 격차가 크고 서로 이해하기 힘든 정서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살타나트 씨는 “그렇지만 부모님은 ‘우리 때는 열심히 노력해도 얻는 것이 모두 똑같았지만 너희 세대는 다르다. 노력하면 할수록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세대”라고 썼다. 유홍준 학부대학장이 심사위원장을, 성재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회위원장을 맡고 이석규 국제처장이 심사에 참여했다.
성균관대는 매년 동남아시아 중국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한글 백일장을 열고 있다. 한류 문화를 확산하고 한국과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성균관대 동문인 김홍덕 이래CS 사장이 해마다 거액을 쾌척해 행사 진행을 돕고 있다. 신한카드와 신한파이낸스도 후원했다.
성균관대는 대회 입상자들에게 성균관대 대학원 석사과정 전액 장학금 혜택을 준다. 1회 수상자 아이다로바 아이게림 씨는 성균관대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카자흐스탄 정부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2회 수상자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신이리나 씨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해마다 꾸준히 배출하는 수상자들이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 국제교류 협력의 가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호종 카자흐 국제관계 및 세계언어대 객원교수는 “성균 한글백일장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한국어경시대회로 인정받고 있다”며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현지 학생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기도 해 현지 한국기업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석규 성균관대 국제처장은 “외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단순히 따라 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의 언어로 여기고 세밀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나가고 있다”며 “일부 참가자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