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선택받은 사람만
승진하는 자리 올랐지만 정권 바뀌면 '용도폐기'
"지금 1급 오르면 총알받이"
부처마다 승진 기피도
툭하면 사표 요구…1급이 동네북?
중앙부처에서 차관보, 실장 등을 맡고 있는 1급은 총 318명(2016년 상반기 말 기준). 전체 중앙 공무원(62만5835명)의 0.05%다. 선임 국장(2급) 중에서도 절반 이하의 ‘선택받은 자’만 승진할 수 있다. 정무직인 장·차관 자리는 ‘관운’에 좌우되지만, 1급은 공무원이 실력껏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자리다. ‘관료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1급들은 말한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간다”고. 1급의 선택지는 승진 아니면 퇴출이다. 국장 때까지 가능했던 ‘버티기’는 없다. 국가공무원법 68조를 보면 1급은 일반직공무원이지만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다.
‘차관 승진’ 바라보고 죽을 힘 다해 일해도 변수가 많다. 외부 출신 장관이 오면 의지와 무관하게 사표를 써야 할 수 있다. 2009년께 차관 승진이 유력했던 경제부처 1급이 대학교수 출신 장관 때문에 옷 벗었던 이야기는 관가에서 유명하다. 장관이 교수일 때 제출한 연구용역 결과물을 ‘수준 이하’로 평가했었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 소용돌이 때문에 공직에서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이른바 ‘1급 학살’이라고 불리는 사례들이다. 조직 쇄신을 내세워 모든 1급에게 사표를 받고선 눈 밖에 난 사람의 옷을 벗기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2014년 1월 국무조정실을 시작으로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 해양수산부 등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 1급은 “오죽하면 ‘1년만 하라고 1급’이란 말이 나왔겠느냐”며 “우린 총알받이에 불과하다”고 한탄했다.
낙동강 오리알 청와대 비서관
탄핵안 가결 후 1급들은 더 싱숭생숭하다. 정권교체 시기가 앞당겨져서다. 정권 교체 뒤 장관은 1급들로부터 사표를 받는 게 관례다. 운 좋게 새로운 정권 핵심이나 장관과 연이 닿는 1급 소수만 차관이나 외청장 등 정무직으로 승진한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6개월이다. 줄을 잡든 마음을 비우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 현재 1급의 운명이다.
이런 부처 1급에게도 동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나가 있는 1급들이다. 평소 같았으면 청와대 파견 후 복귀한 1급은 차관급 자리가 보장된다. 하지만 정권 말기에 근무하면 누구 하나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1급 승진 기피 현상도
상황이 이렇자 1급 자리가 비어 있는 일부 부처에선 1급 승진이란 ‘불상사’를 피하기 위한 국장들의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한 부처 관계자는 “국장 계속하다가 정권 교체 후 1급 승진을 노리는 게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 관가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나가면 갈 데도 없는 게 1급이다. 차관 하다 옷벗으면 공공기관장 자리라도 얻지만, 1급은 마땅한 자리가 없다. 과마다 산하기관 한 개씩은 갖고 있다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1급 출신 중 ‘실업자’가 수두룩하다.
관가에서 끗발 날리는 기획재정부 출신 1급들도 수개월 마음고생 끝에 겨우 한 자리 꿰차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1급 퇴직자는 연이 닿은 대학에서 ‘연구교수’ 타이틀 하나 받고 근근이 외부활동을 하는 게 전부다.
1급 출신 퇴직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0년 넘게 경륜을 쌓아온 1급 공무원들을 ‘관피아’라는 이유 하나로 외면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 수도권 대학교수는 “1급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며 “퇴직 후 3년 이상 손발을 묶는 건 국가적 손실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