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트라의 시작은 1850년, 마차를 만들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1년 철로를 이용해 움직이는 자동차를 선보였고, 1897년 유럽에 처음으로 현대적 개념의 자동차를 등장시켰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타트라를 유명하게 한 것은 독일이다. 자동차 경쟁이 한창 치열하던 1900년대 초반 무렵 독일의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 못지않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오스트리아 출신인 한스 레드빈카(1878~1967)다.그는 1921년부터 1937년까지 체코 타트라의 설계 책임을 맡아 스포츠카에 주로 쓰이는 ‘백본 섀시’를 고안해낸다. 독립식 서스펜션과 공랭식 수평엔진 등도 타트라가 선보인 기술이었다. 일각에선 독일의 포르쉐 박사보다 뛰어난 기술자로 평가하기도 했다.
레드빈카를 유심히 지켜본 인물은 히틀러였다. 히틀러가 포르쉐에게 국민차 계획을 세우라고 했을 때 둘은 모두 타트라를 주목했다. 이후 히틀러가 생각한 독일의 국민차 비틀을 포르쉐 박사가 내놨다. 하지만 영락없이 초기 타트라와 비슷했다. 레드빈카는 소송을 냈지만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그의 항변(?)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히틀러는 자신의 역작처럼 여기는 비틀이 체코의 타트라를 베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타트라 생산을 아예 중단시켰다. 그래서 ‘비틀의 원조는 체코’라는 말만 남은 셈이다.
비슷한 시기 체코에서는 또 다른 인물이 새로운 이동 수단을 준비했다. 바츨라프 클레멘트와 바츨라프 로린 형제였다. 경영 수완이 좋은 클레멘트와 뛰어난 기술자였던 로린은 ‘L&K’를 설립한 뒤 1899년 모터사이클을 데뷔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1905년 첫 번째 자동차를 공개해 체코의 두 번째 오래된 자동차회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의 첫 제품인 ‘부아트레 A’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매우 성공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그랬던 것처럼 1차 대전 후 L&K도 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설립자들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곳이 스코다(SKODA)였다.
1800년대 중반 기계공작소로 출발한 스코다는 유럽 내에서 다양한 기계분야에 진출해 있었는데, 여러 기계 산업 중 하나로 자동차를 점찍고 L&K를 스코다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동차 역사를 논할 때 체코라는 국가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도 타트라와 스코다 때문이다. 지금이야 폭스바겐그룹 산하에 있지만 스코다의 본고장이 프라하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믈라다볼레슬라프가 된 것은 그곳에서 클레멘트와 로린이 모터사이클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창업 장소는 지금 스코다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역사를 가진 스코다가 한국에 곧 진출한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어떨까?
권용주 오토타임즈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