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산업화 상징' 이제는 '도심 흉물'…사라지는 '구름다리' 육교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남대문시장육교는 1977년 12월 세워진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육교다. 폭 4m, 길이 30m인 이 육교에는 남대문시장 상인을 비롯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다. 상인들이 이 육교를 통해 각종 물품을 옮기면서 외부와 남대문시장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 육교는 들어선 지 40년이 되는 내년 초 철거된다. 서울시는 서울역고가도로 보행공원화 사업과 연계해 퇴계로를 보행친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의 승인을 받아 이 육교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육교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 자동차 중심이던 교통정책이 보행자 위주로 바뀌면서 횡단보도가 육교를 대체하고 있어서다. 1960년대 말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설치된 육교는 한때 ‘구름다리’로 불리며 고가도로와 함께 산업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지금은 통행 불편을 가져오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 신세가 돼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는 꼭 필요한 곳을 빼곤 대부분의 육교를 없애기로 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28일 “초등학교 주변 등 교통사고 우려가 높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관할 자치구와 협의해 육교를 단계적으로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보행자 위주의 ‘걷고 싶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육교를 없애겠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0년 248개에 달하던 서울 시내 육교는 2014년 말 166개로 급감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 150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16년간 40%가량의 육교가 사라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육교는 2000개 안팎이다. 2000년에 비해 500개 이상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육교를 철거하려면 서울시 및 각 광역시의 위임을 받아 육교를 관리하는 각 자치구가 주민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이어 관할 지방경찰청에 교통안전시설 심의를 요청한 뒤 통과하면 철거할 수 있다. 도(道) 산하 시·군은 자체적으로 철거할 수 있다.

서울 동작구는 지난해에만 육교 3개를 없앴다. 지난해 10월에는 35년간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애환이 담긴 노량진역 육교를 철거했다. 서울시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도 잇따라 육교 철거에 나서는 추세다.

육교가 사라진 자리엔 횡단보도가 들어서고 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사대문 안 도심에만 30여개의 횡단보도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각 지자체가 육교 철거에 나서는 것은 교통정책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화 시대 이후 지속됐던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이 보행자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는 점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육교가 세워진 지 수십년이 지나면서 낡아 도시 미관을 해치는 데다 매년 들어가는 보수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도 있다. 육교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법 광고물이 가장 많이 걸리는 곳이다. 육교 한 곳당 연간 보수비용만 평균 1000만원에 이른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