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드라마 ‘원티드’(연출 박용순, 극본 한지완)에는 미디어와 자본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톱 여배우 정혜인(김아중 분)이 은퇴를 선언한 당일 그의 일곱 살 아들 현우(박민수 분)가 납치된다. 범인은 “생방송 리얼리티 쇼 ‘원티드(공개수배)’를 제작해 범죄 현장에서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고 프로그램이 시청률 20%를 넘길 것”을 아이의 생존 조건으로 내건다.
첫 번째 미션은 범인이 지정한 자동차 트렁크 안을 확인하는 것. 그 안에서 또 다른 납치 아동을 발견한 정혜인은 그 아이가 학대받아왔음을 알게 된다. 생방송 중 가정폭력을 일삼아온 대학교수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교수는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번째 미션에서는 소아암 환자들을 임상시험에 동원한 의사가 검거되면서 공범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전히 현우의 행방과 범인의 목적은 오리무중이다.
스릴러물임을 감안해도 범죄 현장을 생중계하는 리얼리티 쇼의 등장은 파격적이다. 쇼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청률인 20% 이상을 기록하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을 내보낸다. 피투성이로 살해당하거나 투신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그대로 화면에 내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쇼의 진행자인 정혜인이 납치당한 현우의 생존을 위해 절규하지만 극중 시청자는 어느새 이를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관망한다. 방송을 본 유치원생이 친구를 포박해 벽을 보게 하는 등 모방놀이를 하고, 범인들의 팬클럽이 생긴다. 극단적 선정성이 사회에 불러온 부작용이다.
16부작인 ‘원티드’는 12회에 들어서야 범인의 존재를 드러낸다. 정혜인의 선배이자 시사다큐멘터리 책임 PD인 최준구(이문식 분)다. 그는 임신 7개월 된 아내를 대기업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잃은 피해자였다. 톱스타의 아이를 납치해 주목을 끌어 8년간 추적해온 거대 비리를 세상에 알리려 한 것이다. 지난 4일 방송된 14회에서 정혜인은 가습기 살균제 비리를 이끈 총책임자를 감금해 살균제 성분의 가스를 주입하는 과정을 생중계했다.
시청률 30%가 넘는 범죄 생중계 리얼리티 쇼의 시청자는 이제 미디어의 노예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지닌 주체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수년 전 최준구 PD에게 증언을 부탁받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극중 원티드 제작팀을 찾아와 뒤늦게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원티드’는 시청률 5% 안팎의 마니아 드라마다. 마지막 2회에서라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세상, 가해자가 피해자인 척하는 세상이 다르게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