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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부지방검찰청이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이라는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 11억원가량 손실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남부지검은 최 회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통화 내역을 분석하는 등 증거 수집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최 회장의 내부자 정보 이용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는 기류가 팽배하다. 검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최 전 회장이 주식을 팔기 직전 한진해운의 핵심 인물과 통화한 내용을 확인하더라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핵심 내용이 담긴 문자와 이메일, 녹취, 자백 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내부자 거래에 대한 문제의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 손실을 보는 ‘제로섬 게임’에서 수면 아래에 있던 미공개정보 이용이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검찰도 수사망을 적극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국내 주식시장은 ‘내부자 거래의 천국’이란 오명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급증하는 내부자 거래

[경찰팀 리포트] "안 걸리면 대박"…주식 '내부자거래 천국' 대한민국
내부자 거래에 대한 수사 의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증권범죄를 전담하는 남부지검이 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기소한 인원은 2014년 4명에서 2015년 19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5월까지 14명을 기소했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지난해 내부자 거래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도 바꿨다. 현행법상 내부자 거래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담은 ‘자본시장법 제174조’ 조항에선 경영진 외부감사인 변호사 등 ‘내부자’ 또는 ‘1차 정보 수령자’로 처벌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 국민연금 직원 등 2차 정보 수령자 등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도 처벌할 수 없었다.

이 같은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 규정(자본시장법 제176조 2)’을 시행했다. 2, 3차 정보 수령자는 형사처벌은 아니어도 과태료 등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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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부자 이용 혐의로 유죄를 받는 경우는 물론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도 거의 없다. 지난 1월 남부지검이 내부 정보를 미리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한 CJ E&M 직원 3명과 애널리스트 2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2차 정보수령자였던 펀드매니저는 실적이 공시되기 직전에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피한 혐의를 받았지만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 규정’이 적용되기 전이어서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혐의가 밝혀진 CJ E&M 직원과 애널리스트도 주가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 없었고 직접적으로 주식을 사거나 팔아 이익을 얻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내부자 거래는 투자 정보와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법리적으로 해석이 복잡해 입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죄, 다른 벌…미국 vs 한국

내부자 거래를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악질 범죄’로 대하는 미국 영국 등 해외 선진시장과는 대조적이다. 선진국에선 2, 3차 정보수령자 등에 관계없이 내부정보를 이용한 사람은 처벌하고 부당이득을 모두 환수한다.

2014년 미국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KPMG의 선임 회계사였던 스콧 런던은 골프를 치면서 친구에게 내부 정보를 넌지시 알려줬다가 징역 14개월을 선고받았다. 그 친구는 2년간 주식에 투자해 127만달러(약 13억원)의 이익을 얻어 롤렉스 시계와 현금 5만달러(약 5000만원)를 선물로 줬다. 회계사는 직접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내부자 정보를 넘겨줬다가 징역을 살고 회계사 경력을 접어야 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년 12월 국내 최대 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 안진회계법인 등 회계사 32명이 회계감사 중 알게 된 정보를 주식거래에 활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정보를 모았고 일부는 직접 주식 투자를 해 수억원의 이득도 챙겼다.

하지만 구속 기소된 건 1차 정보수령자이면서 주식에 투자해 이득을 얻은 회계사 2명뿐이었다. 검찰은 나머지 11명에 대해 벌금형 판결이 주로 나오는 약식기소를 했다. 스콧 런던처럼 단순히 정보를 누설한 19명은 형식적인 금융위원회 징계만 받았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회계사 변호사 등과 같이 내부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전문가들이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면 개인투자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볼 뿐 아니라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며 “국내에선 엄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하는 사람이 돈을 벌고 오히려 이 같은 유혹을 견뎌낸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