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시대는 영원히 안녕?…미국 경제학자들 갑론을박
불황이 시작된다는, 혹은 이미 시작됐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특히 서구권 경제는 계속 불안정한 상태였다. 또다시 불황이, 디플레이션이 세계 경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니 탄식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을 견인했던 중국 경제마저 이제는 ‘불황의 새로운 시발점’으로 지목당하는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누렸던 높은 경제성장률과 자산가격 상승의 시기는 이제 ‘영원히 안녕’일까.

칼럼니스트 에두아르도 포터가 최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미국 학계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성장이 멈췄다는 쪽도, 아직 성장할 수 있다는 쪽도 만만치 않다.
고성장 시대는 영원히 안녕?…미국 경제학자들 갑론을박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비관론적인 주장으로 유명하다. 그는 20세기(특히 1920~1970년대) 미국의 경제성장 과정이 ‘이례적인 현상’이었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9세기 이후 미국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두 배 수준으로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을 경험했지만, 앞으론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이유로 △혁신이 지속되는데도 생산성 증가 속도는 줄었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더 높아지기 어려운 데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해 노동력이 꾸준히 감소할 것이고 △20세기 생산성 향상을 주도한 보편적 교육 영향이 줄어든다는 것 등을 꼽았다.

부의 집중이 가속화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9세기 이후 해마다 약 2%씩 늘어난 하위 99%의 가처분소득이 앞으로 수십년간은 0%를 조금 웃도는 증가율을 기록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고든 교수는 내다봤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미 국채의 장기 금리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한 것도 이 같은 ‘고성장 불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비관론이 놓치고 있는 대목도 있다. 고든 교수와 같은 대학의 경제역사학자 조엘 모키르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기고문을 통해 “경제 비관론자들은 기술 발전이 과거에만 일어났으며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가 삶의 질을 한꺼번에 큰 폭으로 개선했듯이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혁명’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얘기다. 모키르 교수는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 등에서 엄청난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비관론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심리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역사학자인 디어드리 매클로스키 시카고대 교수는 에라스무스 철학경제저널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한 비판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식량의 증산 속도가 인구의 증가 속도를 못 따라잡을 것이라고 주장한) 맬서스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웃돈다고 주장한) 피케티에 이르기까지 비관론은 (대중에게) 잘 팔린다”며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이 세상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고 평했다. 그는 “하지만 비관론으로는 근대 이후 (나아지고 있는) 세계 경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낙관론에도 물론 오류가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문제는 입씨름을 한다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불확실한 미래에 맞설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모두가 애써야 하고, 많은 사람이 실제로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