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힘, 클라우드펀딩으로
따스한 온정이 가게를 감싸 안았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명물 ‘영철버거’ 얘기다. 33㎡(10평) 매장 한쪽에 마련된 게시판엔 색색의 메모지에 써내려간 응원메시지가 빼곡했다.
특별한 사연이 있다. 영철버거는 태생이 ‘스트리트버거’였다. 2000년 고대 정경대 후문 앞 노점으로 출발했다. 다진 돼지고기와 채소를 철판에 볶아 듬뿍 담아냈다. 가격은 단돈 1000원.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이 부담 없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소울푸드(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였던 셈이다.
호응에 힘입어 이영철 대표는 영철버거를 가맹점 80여개(2007년 기준)의 프랜차이즈로 키워냈다. 하지만 이후 6000~7000원대의 고급 수제버거 전략을 택한 게 독이 됐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지난해 7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올해 들어 매장을 다시 열었다는 소식에 지난 2일 가게를 찾았다. 12~13년 전 고대에 놀러갈 때면 노점에서 영철버거를 사먹곤 했다. 고대생 친구는 학교 명물로 주저 없이 영철버거를 소개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단품 2500원짜리 스트리트버거, 청양고추를 섞어 느끼하지 않고 맵싸한 특유의 뒷맛은 그 시절 그대로였다.
비슷한 기억이 많은 모양이었다. 01학번 졸업생은 “대학생활을 함께 했던 영철버거… 후배들이 잘 지켜주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2003년 입학 때부터 자주 먹었던 스트리트버거 다시 먹을 수 있어서 좋네요”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먹고 가네요! 예전 그 맛 그대로입니다” 등 졸업생들의 회상이 이어졌다. 추억은 힘이 세다.
스토리가 히스토리(역사)로 진화하면서 쌓인 추억의 힘은 클라우드펀딩 동참을 이끌었다. 고대 졸업생들의 응원도 컸다는 후문이다.
최근 매장을 찾은 한 졸업생은 이렇게 적었다. “나 역시 소액이지만 기부했다. 내 젊은 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영철버거를 후배들도 먹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고대생들을 아껴주신 사장님에 대한 도리로서, 고대의 명물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영업이 힘들다고 한다. 창업 5년 후 생존율이 30%에 불과하다는 통계치도 나와 있다. 품질과 경쟁력이 생존의 기본이다. 다만 그것만으로 영철버거가 되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응답하라 1988’ 열풍에서 보듯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따뜻한 추억과 스토리에 목말라 한다. 고대 앞 명물로 영철버거가 돌아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영철버거가 다시 오픈한 것은 학생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들이 돕기로 결정한 것은 사장님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어떤 고대생의 진심이, 잔잔하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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