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법원·검찰 건물에 숨은 '권위의 심리학'
정치인 A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첫 소환날 A씨는 오르막길과 계단 30개를 오른 뒤 그리스 신전에나 있을 법한 기둥 사이를 지나고 나서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청사에 도착했다. 13층 조사실에 들어서자 창문들이 모두 작아 답답했다. 건물 입구부터 주눅이 들었던 A씨는 앞으로 받을 수사와 재판에 눈앞이 캄캄했다.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심정을 묘사해본 가상의 상황이다. 유현준 유현준건축사무소 대표(전 홍익대 건축대학과장)는 19일 “법원·검찰청 건물들은 ‘권위’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며 “보통 사람들은 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 기가 죽는 경험을 하기 쉽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법조타운인 서울 서초동이 대표적 사례다. 서초동 법조타운에는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비롯해 크고 작은 법조 건물이 모여 있다. 이들 건물의 구조 하나하나가 모두 이런 ‘권위의 심리학’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원 검찰 건물은 대부분 10층 이상이다. 높이는 권력을 상징한다. 기업 회장실이 건물 최고층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13일 출범한 대검찰청 산하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15층 건물의 13층에 있는 것도 같은 효과를 낸다. 대법원 건물은 국내 사법기관 건물 중 가장 높은 16층이다. 주변 도로보다 10m 이상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 건물은 더 높아 보인다. 정문으로 들어간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50m 정도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야 건물 입구가 나온다. 동쪽에 있는 다른 입구도 계단이 30개가 넘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돌아가게 하거나 계단을 오르게 하는 건 바깥과 안의 경계를 둬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대법원 정문 쪽에는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벽이 있다. 이 때문에 정문에서 보면 건물 입구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안에 서서 바깥을 봐도 땅이 아닌 하늘이 보이도록 설계됐다. 폐쇄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 건물은 ㄷ자 형태로 해 성벽이 입구를 둘러싼 모양이 되도록 했다. 대법원을 설계한 윤승중 한국건축가협회 명예회장(원도시 건축사무소)은 “성채(城砦)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며 “사법부의 독립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대법원 건물의 모든 입구가 중앙에 있는 대형 홀의 정의의 여신상으로 통하도록 한 점, 대법정의 문을 과장해 크게 만든 점 등은 신전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고 말했다.

대검찰청 청사 입구에 거대한 기둥을 세워놓은 것도 권위를 보여주는 장치다. 유 대표는 “요즘 건축은 기둥을 안쪽으로 숨기는 경향이 있다”며 “거꾸로 기둥을 일부러 드러낸 것은 신성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기둥을 좌우대칭으로 세워놓은 건 권력이 안정적이라는 걸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창문의 형태와 크기에도 메시지가 담겨있다. 대검찰청 건물은 창문이 외벽에서 안쪽으로 40㎝ 정도 푹 파인 형태로 설계됐다. 크기도 작다. 이 때문에 창문 밖으로 옆을 봐도 옆 방이 보이지 않는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에서 창문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안쪽 상황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창문이 작으면 안쪽에 있는 사람은 바깥쪽과 소통할 수 없어 답답한 느낌이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