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식시장이 연초부터 초토화되면서 투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와 미 국채와 금 등 안전자산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글로벌 사모펀드인 KKR이 최근의 금융시장을 ‘성인 전용(adults only)’에 비유했다고 전했다. 급격한 변동성으로 인해 경험이 적은 투자자들은 치명적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국채만 찾는 투자자들…1주일새 유입 자금 4배 '쑥'
◆위험자산에서 손떼자

17일 펀드정보제공업체 EPFR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3일까지 글로벌 주식자금은 207억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최근 8주간 주식투자금 순유출 누적 규모인 192억달러보다 많은 액수다. 북미 펀드에서만 지난 1~13일 244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양적 완화로 자산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유럽 시장으로 몰려간 자금도 주식에서 손을 떼면서 15주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제 유가 급락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가 일으킨 글로벌 증시 폭락이 원인이다.

신흥국 주식 투자금도 올 들어 20억달러가 줄어드는 등 15주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아시아에선 대만이 15억달러, 한국이 7억5000만달러로 순유출 규모가 컸다. 중국의 경기둔화와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투자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월가의 투자대가도 주식시장 탈출을 ‘권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15일 “시장이 아직 바닥을 확인하지 않았다”며 “미국 증시가 10% 더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에너지와 원자재업종이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연말에 S&P500지수가 2100 수준에서 마감(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 국채로 갈아타는 투자자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15일 투자자에게 배포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자금이 방어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식을 팔고 나간 자금이 안전자산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설명이다.

지난주 고위험 회사채에서 미 국채나 지방정부 채권으로 갈아탄 자금 규모는 25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한 주간(7~13일 기준) 미국 채권펀드에 순유입된 자금은 50억달러로 그 전주(12억달러)의 4배로 증가했다. 반면 성장이 둔화되고 통화가치도 약세인 신흥국 채권펀드 자금은 5억달러가량 순유출을 기록, 감소세로 돌아섰다.

미 국채에 돈이 몰리면서 수익률은 급락(가격 급등)하고 있다. 15일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 국채 가격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금리는 6.5bp(1bp=0.01%포인트) 하락한 연 2.035%까지 떨어지면서 지난해 10월 말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장중에는 연 2%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장기물인 30년 국채도 이날 하루에만 9.5bp 떨어진 연 2.80%를 기록하는 등 강세를 보였다.

◆금 투자도 증가

금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미 달러화 강세가 예상을 밑돌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역시 완만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5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1.6% 급등한 온스당 1090.70달러를 기록했다. 외신은 단기적으로는 온스당 1130달러 선까지 금값이 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연기금과 뮤추얼펀드들은 현금보유액을 늘리고 있다. 급격한 시장 변동으로 손실을 입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헤지펀드 거물인 빌 애크먼이 이끄는 퍼싱스퀘어캐피털은 올 들어 -1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공적 연금과 뮤추얼펀드의 현금 보유량이 2014년 중반 이후 지난해 말까지 2000억달러로 늘었다고 최근 전했다. 연기금의 현금보유 비중은 2004년 이후, 뮤추얼펀드는 2007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WSJ는 한 연기금 관계자의 발언을 빌려 “지금은 비상 상황”이라며 “현금 비중 확대는 중국발 금융시장 쇼크에 대비하면서 연금 지급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