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댐 등 14곳 외부 개입에 표류·중단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댐 300여개 건설


정부·지방자치단체·지역주민·환경단체 간 갈등으로 15년간 표류하고 있는 경남 함양군 문정댐 사업은 ‘가뭄 대란’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자원 확보 사업추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댐 건설 반대 논리 중엔 ‘댐이 무너지면 홍수가 난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도 적지 않다는 게 경상남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논리적인 설명이 잘 통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전국 14개 중·소형 댐 건설 현장에선 갈등 양상만 심해지고 있다고 지자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주민 찬성에도 겉도는 댐 사업
문정댐 사업 초기인 2003년, 수몰지역 함양군 마천면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주민의 72.2%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정부는 댐 건설 후 용수공급으로 나오는 재원을 관광 등 지역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댐 주변 지역 주민들이 반대에 나서면서 사업은 중단됐다. 이들은 “댐을 건설하면 홍수 위험이 더 높아지고, 지리산 명승지인 용유담이 물에 잠겨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상류 지역 일부 주민은 “왜 우리 지역을 희생시켜 부산에 물을 공급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지역 간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최근 가뭄이 심각한 충남에선 1990년대 초부터 청양 지천댐 건설을 추진했지만 관련 절차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지난 4일 최계운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주민 반대가 있는 지천댐은 해수담수화시설로 변경해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사업 포기 발언이다.
◆정치 이슈로 변질된 수자원 사업
물 정책 전문가들은 수자원 관련 토목 사업이 경제적 타당성이나 방재 필요성 차원이 아닌 이념·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고 입을 모은다.
환경 우선주의가 우위를 점하게 된 계기로 ‘영월댐(동강댐) 백지화 사건’이 꼽힌다. 정부는 1990년대 초반 한강 대홍수 뒤 충주댐 상류인 동강에 저수용량 7억6000만t 규모의 댐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이 멸종위기 동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며 반대하자 정부는 2000년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정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한국보다 시민단체 활동이 더 활발한 일본도 2000년대 300여개의 댐을 지었다”며 “우리는 갈등이 극심해 댐 건설은 얘기도 꺼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충남 가뭄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농업은 자연 강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자연재해보험 등을 통해 농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농작물 저장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해 혼란에 대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와 협상 시작에만 1년”
정부도 수자원 확보 사업에 소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2012년 제4차 수자원장기종합계획과 댐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거센 저항에 부딪친 국토부는 이듬해 시민단체를 사전 협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댐 사업절차 개선방안’을 내놨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물관리 정책 신뢰를 회복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합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토부 수자원개발과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영양댐과 문정댐 등의 사전검토협의회를 열었는데 지역주민이나 환경단체에서 대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이들을 협의회 테이블에 앉게 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국토부는 최근 지자체가 스스로 댐 건설을 희망할 경우에만 사업을 한다는 ‘댐 희망지 공모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가 갈등 조정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수자원 전문가는 “지자체장들도 논란이 따르는 댐 개발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