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자 떼려는 여대들
국내 여자대학들이 남학생 유치를 추진하면서 동문과 학부모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다.

덕성여대와 숙명여대에 이어 2ㆍ3년제 대학인 배화여대는 최근 일부 과정에 남학생을 모집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남학생들이 섞인 ‘캠퍼스 투어’를 진행했다. 이에 맞서 배화여고 동문들은 23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배화여고 총동문 비상대책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여성 명문’으로서 배화여중·여고·여대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법인 배화학원은 지난 6월5일 이사회에서 법인 정관 등에 있는 ‘여성교육’이라는 낱말을 모두 ‘교육’으로 바꾸면서 남학생 유치를 추진해왔다. 최근엔 평생교육원 전문학사과정을 ‘남학생도 다닐 수 있는 학점은행제 대학’이라고 홍보하고, 남학생이 포함된 캠퍼스 투어도 진행했다. 비대위는 “배화학원의 근간을 흔드는 정관 개정을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진행해 학내 구성원 모두의 정체성을 짓밟았다”며 “시류를 좇아 남녀공학을 추진하기보다 배화여대만의 특성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덕성여대도 올해 초 이원복 총장이 취임일성으로 ‘남녀공학 대학으로 전환’을 내세워 대학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교육부 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되는 등 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돌파할 수단으로 남학생 유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성(性)을 뛰어넘은 경쟁이 불가피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남녀공학으로의 변화를 덕성 구성원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검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관계자는 “대학구조개혁 평가 등으로 남녀공학 전환 문제는 현재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서도 “이 총장이 임기 내 전환 입장을 밝힌 만큼 중장기적으로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는 지난달 남학생에게 일반대학원 입학을 허용하기로 학칙 개정을 추진했다가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학교 측은 연구역량 강화와 대학원 평가 대비 등을 이유로 문호 개방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동문과 재학생들이 숙명여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극렬히 반발했다.

여대들이 잇따라 남학생 유치를 추진하는 것은 졸업생 취업률이 결혼과 출산 등으로 남녀공학 대학에 비해 불리하고 동문 네트워크도 비교적 약하다는 인식에서다. 앞서 1990년대에 여대 4곳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성심여대는 가톨릭대, 효성여대는 대구가톨릭대와 통합했고 상명여대와 부산여대는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면서 교명을 각각 상명대와 신라대로 바꿨다.

현재 국내 4년제 여대는 이화·숙명·성신·서울·덕성·동덕·광주여대 등 7곳이다. 한때 수백 개에 달했던 미국 여대도 현재는 40여개 수준으로 줄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