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가 '광고맨' 박서원의 야심…한컴 인수로 오리콤 부활 이끈다
두산그룹 광고회사인 오리콤이 한화 계열 광고회사 한컴을 인수한다. 국내 광고시장에서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 간 인수합병(M&A)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고업계에서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CCO) 부사장이 M&A를 주도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두산과는 무관하게 광고 제작자로 활동하던 박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이 회사에 합류해 ‘오리콤 키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업계 6위로 껑충…‘빅5 재진입’ 발판

오리콤은 한화S&C 등이 보유한 한컴 지분 100%를 24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14일 발표했다. 오리콤은 “한컴은 독립경영 체제로 운영하고 사명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리콤은 1967년 설립된 국내 최고(最古) 광고회사지만 후발주자에 밀려 과거에 비해 위상이 떨어졌다. 지난해 오리콤의 취급액(해당 광고회사를 통해 집행된 광고비 총합)은 1542억원으로 국내 8위, 한컴은 1501억원으로 9위를 기록했다. 두 회사의 취급액을 단순 합산하면 3043억원으로 TBWA코리아(2958억원)를 제치고 6위가 된다.

광고업계 ‘톱3’인 제일기획(4조9231억원) 이노션월드와이드(3조5988억원) HS애드(1조639억원)와는 격차가 크지만 5위 SK플래닛(3980억원)은 바짝 추격할 수 있다.

오리콤은 한컴 인수를 발판으로 전통적인 광고회사에서 ‘종합 콘텐츠그룹’으로 변신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한컴은 매년 한강변에서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비롯해 기념식, 스포츠대회 등 굵직한 이벤트를 주관하는 데 강점이 있다. 오리콤은 광고회사로 널리 알려졌지만 매출의 절반은 출판사업에서 얻고 있다. 보그, GQ, W 등 유명 패션잡지를 발행해 최신 트렌드에 관한 정보가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영섭 오리콤 사장은 “광고와 무관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가진 회사라면 추가 M&A와 사업 제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두산 오너들이 직접 접촉

박 부사장은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뒤 2006년 광고회사 빅앤트인터내셔널을 차렸다.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옥외광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세계 5대 국제광고제에서 15개 상을 휩쓸어 화제를 모았다.

청소년 성교육 캠페인에 기부하는 콘돔 브랜드 ‘바른생각’, 낙과 피해 농민을 돕는 과일잼 브랜드 ‘이런쨈병’을 판매하기도 했다. 두산과 거리를 두고 개인활동에 집중해 ‘차세대 스타 광고인’으로 꼽혀온 그는 작년 10월 오리콤의 광고제작 총괄임원을 맡았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 말 한화그룹의 기업 이미지 광고를 수주하면서 한컴 인수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의 주력 계열사들이 대부분 광고 마케팅에 소극적인 중공업·기계업종이다보니 그룹 내 광고물량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박 부사장이 M&A를 통해 오리콤을 ‘퀀텀 점프’시키는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평소 친분이 있는 두 그룹 오너들 간의 교감이 딜을 성사시키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박 회장은 경기고 동문(김 회장이 3년 선배)이다.

한화 입장에서는 한컴 매각이 ‘선택과 집중’ 전략에 부합한다. 한화는 삼성그룹과의 빅딜,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획득 등을 통해 석유화학, 방위산업, 유통·서비스업 등에 힘을 싣고 있다.

반면 한컴은 광고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작된 2013년 이후 2년 새 취급액이 30% 이상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컴은 한화S&C가 69.87%(작년 말 기준)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며 김 회장 부인인 서영민 한화갤러리아 고문이 30.13%를 보유하고 있다.

◆“‘박용만 아들’ 꼬리표 떼고 싶다”

광고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오리콤은 지난 1년여 동안 KB금융, 파리바게뜨, 위닉스, 캐논, 세정, 아워홈 등 신규 광고주를 대거 확보했다. 한 광고회사 관계자는 “박 부사장 영입 이후 오리콤이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참여를 부쩍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평소 “‘박용만 회장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내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연 오리콤 국장은 “향후 박 부사장을 주축으로 대형 광고회사로 다시 발돋움하기 위한 전략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현우/송종현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