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데뷔 주선한 이백천 前 PD
미술에 눈뜨게 한 가수 김민기
'화개장터' 가사 쓴 김한길 등
'자유 영혼' 옆엔 수많은 '그 사람'

그래서일까, 조영남에겐 ‘괴짜 천재’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배우 윤여정과의 결혼과 이혼으로 대표되는 여성 편력, 거침없는 풍자성 발언 등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들은 조영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주민등록상으론 1944년생이지만 어머니가 ‘해방둥이’라 했기 때문에 1945년생이라 굳게 믿는다”고 말한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며 “한 판 잘 놀았고, 후회 없이 재미있게 살았다”고 돌아봤다.
자유분방하고 다채로운 삶만큼이나 조씨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은 많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로를 바꾼 사람으로 김연준 전 한양대 총장을 첫손에 꼽았다. 10대 시절 독학으로 성악을 공부한 조씨는 고2 때 전국 성악 콩쿠르에 나갔다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당시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김 전 총장은 그에게 바리톤 조상현 선생을 개인교사로 소개했다.

이백천 전 동양방송(TBC) PD도 큰 은인이다. 조씨에게 미8군 쇼 오디션 참가를 권유하고, TBC 가요방송 ‘쇼쇼쇼’에 출연하도록 주선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톰 존스의 노래 ‘딜라일라’ 번안곡으로 TBC방송을 통해 데뷔했다.
‘아침이슬’의 작곡자이자 연극 ‘지하철 1호선’ 연출가로 유명한 김민기는 조씨가 미술에 눈뜨도록 만들었다. 서울대 회화과 출신인 김민기는 조씨에게 “형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1973년 한국화랑에서 열린 조씨의 첫 전시회를 제안한 것도 김민기였다.
1988년 발표된 최대 히트곡 ‘화개장터’는 작사와 작곡 모두 조씨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작사는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했다.
김 전 대표와 조씨는 1980년대 미국에서 알게 돼 단칸방에서 함께 지낸 사이다. 조씨는 “당시엔 저작권 개념이 없으니 내 이름으로 저작권을 등록했다”며 “다행히 김한길이 잘 살고 있어 한 번도 저작권료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음반 발표에 게으르던 그는 지난해 신곡 ‘대자보’와 ‘쭉~서울’ ‘통일 바보’를 잇달아 발표했다. 올해도 ‘2015 세시봉 친구들’ 공연 투어를 펼쳤고, 2007년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킨 큐레이터인 18년 지기 신정아와 손잡고 부천 석왕사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