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외석 해피쿡 사장이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본사 전시장에서 자사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최외석 해피쿡 사장이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본사 전시장에서 자사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1996년 베트남의 경제중심지 호찌민 인근 동나이공단에서 일하던 최외석 풍강산업 차장(당시 35세)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며칠 전 회사 대표로부터 받은 제안 때문이었다. 회사 대표는 그를 조용히 불러 “당신이 베트남 공장 사정을 제일 잘 아니 공장을 인수해 한번 경영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프라이팬, 냄비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유럽 수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1995년 베트남에 설립됐다. 그러나 수출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1년 반 만에 자본금을 다 까먹고 100만달러의 부채만 안게 됐다. 회사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에게 부채를 갚아주면 회사를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최 차장으로선 밑질 게 없었다. 돈도, ‘빽’도, 인맥도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도 딱히 할 게 없었다. “5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일해보자”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부도위기 회사를 업계 1위 업체로 일궈

최 차장은 공장을 인수해 이듬해 이름을 ‘해피쿡’으로 바꿨다. 그로부터 19년. 해피쿡은 베트남 최대 규모의 주방용품 제조 및 유통업체가 됐다. 해피쿡은 프라이팬과 냄비 등 조리기구는 물론 전기밥솥, 정수기, 가스레인지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입 판매하는 물품까지 합하면 취급하는 제품이 1000종에 육박한다.

80%는 베트남 현지에서 판매하고, 나머지는 유럽 등에 수출한다. 최 사장은 “이제 베트남에서 해피쿡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자신한다. 전국 주요 도시 어디서나 해피쿡이란 입간판을 볼 수 있다. “삼성과 LG는 몰라도 해피쿡은 안다”는 게 현지인들의 얘기다. 지난해 매출은 2300만달러, 순이익은 200만달러(순이익률 8.6%)였다.

빚더미 회사를 업계 1위 업체로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회사를 경영해본 경험도 없는 30대 회사원이 말이다. 최 사장은 “특별한 비법을 배워본 적도, 배울 기회도 없었다”며 “죽어라 일했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운과 기회가 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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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하면 통한다’

최 사장이 공장을 인수한 뒤 시도한 것은 세 가지였다. 우선 타깃시장을 바꿨다. 수출 대신 베트남 내수시장을 겨냥했다. 유럽시장에서는 이미 저가 중국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없었다. 아직 중국산이 침투하지 않은 내수시장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는 그날부터 공장에 쌓인 재고품을 팔기 위해 40여명의 직원과 전국을 누볐다. 브랜드 인지도도, 돈도, 대리점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발품’ 파는 일뿐이었다. 1주일에 사나흘은 오토바이에 물건을 싣고 전국 시장을 훑었다. 베트남 상인들도 지독스런 이 한국인과 직원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부도 위기의 거래회사를 인수한 것이었다. 주위에선 “돈도 없는데 어려운 회사를 또 인수하느냐”며 말렸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최 사장은 해피쿡의 품질이 좋기 때문에 내수시장만 뚫으면 더 많은 부품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그런 부품회사를 거의 무상으로 인수할 수 있는 기회라는 데 주목했다. 인수대금 결제시기를 뒤로 늦추고, 재고는 싸게 파는 대신 현금을 선불로 받으면 충분히 현금흐름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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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해피쿡 제품이 팔리면서 회사 재고가 해소되고, 인수한 회사에서는 부품을 새로 만드느라 밤을 새워야 할 판이 됐다. 최 사장은 약속한 대로 5년 만에 회사 빚을 다 갚고 지분 100%를 인수했다. 최 사장이 마지막으로 공을 들인 건 광고였다. “광고로 신뢰를 얻어야 전국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그는 호찌민 하노이 등 주요 도시에 광고 입간판을 걸었다. 목 좋은 곳에 도시바 같은 글로벌 브랜드 입간판이 있으면 그 옆에 똑같은 사이즈로 공간을 만들었다. 일부 지역에선 광고비용이 연간 10만달러씩 들었지만 강행했다.

무리한 확장 투자, 부메랑돼 돌아와

6~7년쯤 되니 사업이 완전히 성장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매출이 매년 20~30% 늘어나기 시작했다. 흑자폭이 커지자 욕심이 생겼다. 다른 사업도 못하란 법이 없어 보였다. 냄비와 프라이팬 제조 외에도 전기밥솥, 양식기(포크, 나이프 등), 김 가공 등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댔다. 은행 빚도 냈다.

그러나 전공도 아닌 분야에 무리하게 들어간 게 화근이었다. 돈만 들어가고 판매가 되지 않았다. 자금난에 부딪혀 3년 만에 신사업 대부분을 정리해야 했다. 최 사장은 “사업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고 말했다. 위기는 멈추지 않았다. 2006년을 전후로 베트남에도 중국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방용품 제조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방법은 하나였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피해 해피쿡이 선점할 수 있는 시장을 다시 뚫어야 했다. 그 해법은 유통이었다.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변신 중

해피쿡은 그동안 △쿠프마크, 메트로, 빅씨, 로타, 멕시마크 등 대형 할인유통체인 △전국 63개성에 있는 130여개 대형 도매업체 △SCJ, GS, 롯데 등 홈쇼핑업체 △50여개 온라인 판매업체 등에 물품을 공급했다. 자체 유통망이 없었다. 최 사장은 해피쿡 브랜드를 살릴 자체 유통망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 3년 내 베트남 전역에 150여개의 매장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자사 브랜드 제품뿐 아니라 수입 제품도 취급한다. 종합 주방용품점 콘셉트의 매장이다.

최근엔 영업용 주방용품 시장에도 진출했다. 베트남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고급 호텔이나 음식점이 늘어나고 있어 이 시장을 겨냥한 영업용 조리기구 제품들을 출시했다. 최 사장은 “그동안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항상 시장을 보면서 변신을 통해 시장을 리드하는 기업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호찌민=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