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성완종 인터뷰'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스스로 ‘성완종 스캔들’에 말려들면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 대신 국정을 총괄하는 이 총리에 대한 사퇴 요구가 쇄도했다. 돈을 줬다는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주장과 몇 가지 심증만 갖고 많은 사람들은 이 총리가 책임지라고 압박했다. 야당은 총리 해임안 발의를 결정했고 여당도 공식적으로는 대통령 귀국을 기다리자면서도 찜찜해했다. 끝까지 버티던 이 총리가 결국 사임의 뜻을 밝혔지만 추문의 파장은 더 커질 것 같다.

성 전 회장 인터뷰는 우리 사회의 곪은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체 인터뷰를 관통하는 정서는 배신감, 분노, 그리고 억울함이다. 자신은 많은 도움을 베풀며 살아왔는데 정작 본인이 곤경에 몰리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칼을 들이댄다, 다른 업체의 부실 채무는 털어내주면서 자신만을 표적으로 겨냥해 채무 탕감을 불허해서 기업이 망했다, 거기에다 사정의 수사망까지 조여오는 데 대한 배신감과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의 유서처럼 돼 버린 인터뷰는 몇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마당발인 그가 여러 유력인사들에게 선심을 후하게 써왔다는 사실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선거 때는 누구나 다 그렇게 주고받으면서 일을 치른단다. 정치와 사업이 모두 그렇게 구축한 인간적 의리와 신뢰관계 위에서 이뤄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을 사정 대상으로 삼아 자금줄을 막고 표적 수사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정 대상 1호여야 할 사람이 오히려 자신에게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으니 기가 차단다.

그런데 회사 돈을 빼돌려 만든 비자금이 없었다면 그런 선심이 가능했을까. 그가 횡령과 배임 등의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고서도 두 번이나 사면의 혜택을 입은 것도 그렇게 구축한 인맥을 활용한 결과일 것이다. 당장은 불법 비자금 조성만으로도 성 전 회장이 사정 대상임은 틀림없고 그의 배신감과 억울함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를 향한 국민적 동정은 없다.

그의 말대로 누구나 다 그렇게 주고받는 의리와 신뢰관계에서 정치와 사업이 이뤄진다면 과연 정치권과 재계의 어느 누가 그렇게 구축된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롭겠나 싶다. 그리고 누구나 사정 대상인 정치권이 어떻게 부패척결을 해낼지도 의문이다. 부패가 만연한 만큼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의 비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패사슬의 자생력은 끈질기다. 성 전 회장의 반발이 이토록 거셀 줄 알았더라면 그에 대한 수사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는 이미 터진 일이다. 유야무야로 덮고 만다면 앞으로 누가 다시 부패척결의 총대를 메려고 하겠는가. 부패척결에 나서는 인사들은 척결 대상자들의 공작으로 금세 ‘뭐 묻은 개’로 돼 버릴 것이다. 성 전 회장의 유언 인터뷰가 그런 공작이고, 혼자만 죽지 않겠다고 작심한 만큼 그 파장도 컸다.

최근의 사태를 보면 여론은 너무도 쉽사리 그런 공작에 휘말려 든다. 물론 총리가 자숙하지 않고 거짓 해명을 일삼는 바람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스스로 오해의 대상이 되도록 처신한 점을 사과하고, 그런 사실이 밝혀지는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성 전 회장에 대한 수사는 반드시 해야 했다는 고충을 밝혔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앞으로 새 총리는 물론 모든 수사 책임자들이 자신이 관련된 사건은 그대로 덮어버릴 것 같은 우려는 나만 하는 것일까.

다 드러났다시피 우리 사회의 부패는 이미 관행화됐다. 세모가 청해진해운으로 부활해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토대도 바로 이 부패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부(富)를 재분배하는 권력이 서슬 퍼렇고 여기에 빌붙으면 큰 이익을 챙기는 일이 가능한 사회에서는 부패가 사라질 수 없다. 권력에 의한 부의 재분배 기능을 정비하고 투명하게 하는 것이 부패 추방의 핵심 과제다. 그런데 이미 터진 만큼 이번 기회에는 물고 물리는 기존의 부패사슬을 철저한 수사로 도려내야 한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