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금' 경조사비] 은행장·대기업 CEO, 최대 200만원…한 해 1억 쓰기도
국내 한 대형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지난 주말 지인 자녀 결혼식 등 8건의 경조사를 챙겼다. 봄·가을 결혼철에는 10건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경조사비로만 1주일에 수백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그는 지난해 경조사비로 7000만원 정도를 냈다. 비용 중 일부는 회사 경비로 처리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업무추진비로 처리하기 어려운 애경사가 비일비재해서다.

또 다른 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지난해 5000만원을 경조사비로 썼다. 현금 4000만원, 화환과 조화비용이 1000만원 선이다. 경조사비로 쓴 업무추진비는 모두 그의 연봉에 포함돼 있다. “연봉이 많다고들 하지만 경조사비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는 게 그의 한탄이다.

대외 활동에 적극적인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한 해 경조사비가 1억원을 웃돌기도 한다는 게 산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챙겨야 할 경조사 숫자가 많은 데다 체면상 건당 금액도 신경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CEO들은 경조사 봉투에 최소 20만~30만원에서 100만~200만원까지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적으로 CEO가 임직원의 경조사를 다 챙길 수 없다 보니 일부 기업은 경조사비를 단체협약으로 정해 회사가 지급한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근무 연수에 따라 본인 결혼 때 15만원부터 45만원, 자녀 결혼 땐 10만~30만원을 지급한다.

국회의원들도 경조사비가 골칫거리다. 선거법은 국회의원 등이 지역구에 있는 사람에게 경조사비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지역구 외의 경조사에는 보통 10만~30만원을 낸다.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다. 그러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경조사를 크게 알리지 않거나 받은 경조사비를 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무원은 부처별 행동강령을 따른다. 원칙적으로 공무원은 직무 관련자 등에게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경조사를 알리지 못한다. 5만원이 넘는 경조금품 등을 주거나 받아서도 안 된다. 업무추진비는 클린카드로만 결제해야 해 경조사비로 쓸 수 없다. 다만 근무하고 있는 기관의 공무원 간 주고받는 경조사비에는 제한이 없다. 친분에 따라 국장급은 10만원 이상, 장관급은 20만원 정도를 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규/강현우/김주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