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국방부 지원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일과 후 어학 공부를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서울 용산 국방부 지원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일과 후 어학 공부를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자기 계발로 잠재능력을 발휘하는 장병들이 적지 않다. 군에 몸담으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작가로 등단하는가 하면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운동선수도 있다. 본인의 정신자세와 노력에 따라 군 복무기간이 ‘삶의 낭비’가 아닌 ‘인생 전환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군에서 자격증과 학사 학위까지 받아

국군통신사령부에서 복무 중인 안응식 중사(32)는 ‘자격증 왕’이다. 군에서 기능장 2개(통신설비기능장, 전자기기기능장)를 포함해 자격증 15개를 취득했다. 3년 만에 이룬 쾌거다. 안 중사는 “2003년 군에 들어온 후 전산, 통신, 장비 관리 분야에서 10년 넘게 열심히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응시 자격이 생긴 이후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공부하고 실기도 준비해 기능장을 딸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공고에 진학한 안 중사였다. 통신 부사관에 지원, 입대한 후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일반전초(GOP) 대대에서 2년간 복무하며 야전통신기술을 습득했다. 2011년엔 한국폴리텍대 모바일정보통신학과 학사학위도 얻었다. 안 중사는 “자격증을 취득할 여건과 기회를 준 곳은 군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정비기능장 시험에 도전할 계획이다.

육군 2군지사 정비근무대의 이창승 상사(39)는 “군 입대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군에서 배움에 대한 열망을 키웠기 때문이다. 1998년 이 상사는 호기심에서 월급을 모아 컴퓨터를 샀다. 이를 본 상급자가 이 상사의 컴퓨터 활용능력을 인정, 간부들의 컴퓨터 교육을 맡게 했고 이 상사는 2000년 인터넷정보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학습에 더욱 재미를 붙였다. 이후 자동차 정비기능장에 도전해 최연소로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고 인천기능대에 국비로 다닐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이 상사는 “아버지 묘에 자동차공학사 학위 수여증을 놓고 절을 하면서 가슴이 뻥 뚫렸다”며 “차량정비기술로 이라크에 파병 갔다 왔고 레바논 유엔평화유지군으로도 활동하는 등 외국에서도 일해본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군을 자기 계발 기회로

군 복무를 악재로 여기는 운동선수들이 많다. 프로골퍼 김승혁 선수(29)와 축구의 김원일 선수(29)는 달랐다. 이들은 모두 해병대 출신이다. 올해 프로 11년차인 김승혁 선수는 2013년까지만 해도 무명이었지만 지난해 5월 SK텔레콤 오픈과 10월 한국 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는 프로 데뷔 이후 슬럼프를 겪다가 2008년 입대했다. 1년 동안 골프장 관리병으로 복무하며 골프에 대한 의지를 다진 끝에 스타로 받돋움하게 됐다.

김원일 선수는 축구 명문 숭실대에 입학했지만 주전 경쟁에 힘겨워하던 끝에 2007년 1월 입대했다. 경북 포항시 해병 1사단에서 복무를 마치고 2010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한 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육군 3포병여단 379대대에서 복무하다가 지난해 12월 전역한 이성학 씨(24)는 같은 해 11월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두 문제만 틀렸다. 원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자신의 적성과 잘 맞지 않다고 판단한 이씨는 입대 후 수능에 재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이씨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시간표에 따라 운영되는 군대에서 생활리듬을 유지하며 공부에 전념했다. 이씨는 “전우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협동심을 키우고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병영서 ‘작가’로 등단

사회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글 실력을 군대에서 인정받은 병사도 있다. 해병대 본부대대에 근무 중인 김병철 병장(22)은 ‘두 분의 아버지’라는 수필로 2014년 병영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병장은 “훈련소 소대장님과 지원대장님 등에 대한 감사함을 아버지에 빗대 표현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 병장은 글 짓는 것을 좋아했지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그런 그가 이번 병영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됐다. 그는 “군 생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며 “글쓰기라는 새로운 재능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고 고마워했다.

고은이/김동현/박상익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