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단말기' 처음 만든 소니…왜 아마존 킨들에 밀렸나
이북(E-book)의 대명사는 아마존의 킨들이다. 그러나 이북을 소니가 킨들보다 앞서 만들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니는 이잉크 기술을 적용한 이북을 최초로 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에서 소니의 이북인 ‘리더’는 킨들보다 디자인이나 기술 면에서 더 우수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소니 리더는 기억되지 못했고 아마존 킨들은 히트상품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앞선 기술이 곧 시장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모르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술 집착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 및 경쟁 환경적 요인 등이 있겠지만 혁신의 원천으로 기술이 곧 시장이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장 조사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고객 경시라는 오해로 이어졌다. 포천 등을 통해 제기된 고객 무시가 하이테크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혁신의 대명사인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로 방점을 찍었다.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만약 헨리 포드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고객은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시장 조사에 절대 의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시장 조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지 혁신의 원천으로서 고객을 간과하라는 것이 아니다.

획기적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객과 멀어지기도 한다. 즉 고객이 획기적 혁신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고객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 제품에 대해서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다. 또 사고의 틀을 기존 제품과 현재에 제한시켜 기존 제품을 수정하는 개선적 혁신을 뛰어넘는 획기적 혁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획기적 혁신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기술 중심적인 연구개발(R&D)에서 출발하게 된다. 혁신적 기술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을 목표로 하며 기술 기반의 공급자 관점을 갖기 쉽다. 그러나 아무리 획기적 혁신을 통해 기술적으로 앞서 있는 제품을 만들어도 고객에 의해 선택, 소비되지 않으면 시장 성공은 요원해진다.

대다수 기업은 상품 개발 단계에서 기술과 고객이라는 두 축의 대응을 통해 상품화를 결정하는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다. 기술 축은 어떤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이고 고객 축은 고객이 어떤 니즈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기술과 니즈가 대응될 때 상품 개발이 진행된다.

그러나 고객 요구를 기술적으로 구현한 제품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시장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제품이 고객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제품 자체가 제공하는 가치로는 불충분하며 제품과 관련된 고객의 욕망, 사용 동기, 사용 환경, 라이프스타일 등의 ‘고객 통찰력’에 기반한 매력적인 가치 제안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장의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제품 자체에만 집중하면 혁신 기술 제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사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이유로 사용되는지 등을 지나치기 쉽다. 앞에서 언급한 킨들의 경우 제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소니의 이북보다 떨어질지 모르지만 ‘방대한 양의 책을 저렴한 가격에 즉시 그리고 쉽게 제공받길 원한다’는 통찰력이 있었다.

고객 통찰력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은 고객을 관찰하고 고객이 생성해내는 데이터를 분석하며 최근에는 고객을 직접 제품 개발의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기술은 최고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기업의 목표는 시장의 성공이며 고객은 기술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고 가치를 구매한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시장의 성공으로 연결해줄 고객 통찰력이며 이 두 요소를 조화시키는 기업의 자세다.

김나경 책임연구원 kimnakyung@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