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종의 M&A 분야 ‘여성 4인방’인 이혜정(왼쪽부터), 안혜성, 강지원, 최정은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제공
법무법인 세종의 M&A 분야 ‘여성 4인방’인 이혜정(왼쪽부터), 안혜성, 강지원, 최정은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제공
“주말도 퇴근시간도 없이 일할 때는 노예선을 탄 기분이 든 적도 있어요. ‘100점짜리 엄마까지 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버린 게 거친 인수합병(M&A) 자문시장에서 롱런하는 비결 같습니다.”(강지원 변호사)

[Law&Biz] "로펌의 꽃 M&A분야, 세심한 여성이 더 잘해"
로펌들은 M&A를 포함한 기업법무, 금융·조세, 송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법률자문을 한다. 이 중에서도 M&A를 포함한 기업법무 분야는 대형 로펌들의 주력 사업이자 최대 수익원이다. ‘로펌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 분야에선 여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잦은 야근과 술자리 등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여성의 진출이 쉽지 않아서다.

24일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만난 여성 M&A변호사 4인방은 “금녀(禁女)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M&A 자문업계에서도 여성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주요 고객인 기업 내 여성 임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강지원 변호사를 비롯해 이혜정, 안혜성, 최정은 변호사는 모두 세종 ‘코퍼릿 2팀’ 소속이다. 코퍼릿 2팀은 팀 전체 30명 변호사 중 5명이 여성이다. 국내 로펌 M&A팀 가운데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다.

거칠기만 해 보이는 M&A 업무에 여성 변호사들이 빠져든 이유는 뭘까. 이혜정 변호사는 “기업업무는 송무(형사·민사 재판 등 소송에 관한 사무)보다 활동적인 면이 강하다”며 “무엇보다 급변하는 트렌드에 따라 개정되는 경제 관련 법률을 계속 배우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고 말했다. 최정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시절 법원 시보를 경험했는데 저절로 다이어트가 될 정도로 경직된 분위기였다”며 “지금은 비교적 자율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어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코퍼릿 2팀은 지난 5일 동부그룹의 물류 및 택배 계열사인 동부익스프레스 매각을 자문했다. 동부건설(50.1%)과 재무적투자자(FI)인 가이아디벡스제일차유한회사(49.9%)가 갖고 있는 지분 100%를 약 3100억원에 국내 중형 사모펀드(PEF)인 KTB에 넘긴 거래다. 동부그룹의 첫 재무구조 개선 성과를 도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인수 후보자들이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으면서 매각이 반 년 넘게 지연돼 마음고생 몸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안혜성 변호사는 “매각이나 인수거래가 진행될 때는 밤샘근무나 주말 반납은 다반사”라며 “업무시간이나 강도는 다른 파트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업무시간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좀 더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요 고객인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남성 위주로 돼 있는 점도 여성 변호사의 M&A 분야 진출이 더딘 이유다. 강지원 변호사는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어울리거나 형, 동생하며 금세 쉽게 친해지는 데 반해 여자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특히 딜 소싱(일감 따오는 것)이 중요해지는 10년차 이후부터는 이런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최정은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인내심이 강하고 꼼꼼한 것, 외국 고객을 대할 때 언어구사력이 좋은 것은 여성 변호사들의 강점이기도 하다”며 “기업 등 고객 측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율이 확대되면 여성 변호사의 상대적인 장점이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여성 변호사의 최대 고민도 일과 직장의 병행이다. 결혼 11년차 주부인 강지원 변호사는 “일하면서 100점짜리 아내, 100점짜리 엄마까지 되려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역할 간에 적당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여성변호사들이 자녀 출산 후 파트타임으로 전환했다가 자녀를 대학에 보낸 뒤 풀타임으로 다시 바꾸기도 한다”며 “국내에서도 일부 로펌이 여성 변호사를 대상으로 파트타임제 도입을 추진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정영효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