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지론 불완전판매' 과징금 협상 결렬…美 법무부 vs 월가 대형銀, 소송전 벌이나
‘미국 법무부와 월가 대형은행의 팽팽한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미 법무부와 과징금 액수를 놓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소송전을 치를 위기에 처했다며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씨티그룹과 BoA의 주택저당담보부채권(MBS) 불완전 판매와 관련한 협상을 중단하고 소송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불법행위로 대대적인 조사를 받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10여개 금융회사에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금융위기 후 벌금 1000억달러

당초 미 법무부는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MBS 불완전판매 혐의로 씨티그룹과 BoA에 각각 100억달러(약 10조2000억원), 170억달러 수준에서 과징금 협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두 회사는 이에 못 미치는 40억달러와 120억달러를 각각 제안했고, 협상은 결렬됐다. 지금까지 미 사법당국이 대형은행에 부과한 벌금은 JP모간체이스가 금융위기 전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실 판매로 낸 130억달러가 최대였다.

씨티그룹은 JP모간, 크레디트스위스, 웰스파고 등 8개 금융사와 함께 투자자들에게 MBS를 불완전판매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다. JP모간은 이미 과징금 130억달러를 내기로 사법당국과 합의했다. 씨티그룹은 조사 대상 기관 8곳 중 MBB 취급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금융정보업체 샌퍼드번스타인에 따르면 JP모간과 BoA는 각각 4500억달러, 9650억달러어치의 MBB 관련 상품을 판매했고, 씨티그룹은 910억달러를 취급했다. 이를 두고 미 사법당국의 처벌 수위가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에릭 고든 미시간대 교수는 “과징금 액수가 부당하고 지나치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 사법당국이 대형은행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이대는 건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론 때문이다. 당시 부동산 시장 붕괴와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가져온 금융회사들의 불법행위도 문제지만, 사전에 대처하지 못한 사법당국도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때문에 미 법무부는 금리조작,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등 금융회사의 각종 불법 행위를 강도 높게 조사하는 한편 과징금 등 처벌 수위를 강화해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대형은행들이 미국에 낸 벌금과 합의금은 총 1000억달러(약 102조원)에 이른다.

◆선거 앞둔 ‘정치적 공세’ 비판도

미 법무부의 과도한 벌금 때리기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공세라는 비판도 있다. 에릭 홀더 미 법무부 장관이 유임을 의식해 강경 노선으로 급선회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의회 청문회 때 “대형 은행들은 경제적 파장을 고려해 지나친 벌금을 부과하거나 형사 기소가 어렵다”고 말해 정치권의 비판을 받아온 홀더 장관은 올 들어 강경파로 변신했다. 대형 투자은행에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대마불기소(too big to jail)’는 없다”며 불법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 미국은 지난달 미국인 고객의 탈세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스위스계 금융그룹 크레디트스위스에 26억달러의 벌금을 매겼다. 이란 등 제재국과의 거래 혐의가 포착된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에는 최고 160억달러의 벌금을 물리고 달러 거래를 중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크레디트스위스와 같은 글로벌 은행이 미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한 것은 1995년 일본 다이와은행 이후 20년 만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말랑말랑하기만 했던 그가 몇 달 만에 전혀 다른 저승사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홀더 장관의 정치적 줄타기가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법무부가 경영진을 기소하거나 지점을 폐쇄하는 등 초강수를 두기에는 시장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3개 스위스 은행이 탈세공모 혐의를 받고 있고 월가 여러 은행이 돈세탁·가격조작 등에 연루돼 있다”며 “홀더 장관은 은행을 처벌하는 동시에 시장 혼란 등 2차 피해도 막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