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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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번지르르한 기업은 쓰러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내실이다.” 장복만 동원개발 회장(72)이 틈만 나면 임직원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부산 범일동의 한 낡은 오피스텔 8층 한쪽에 마련된 장 회장의 집무실엔 고급 가구나 고미술품이 하나도 없다. 구입한 지 20년이 넘은 낡은 책상과 손때 묻은 소파 하나가 전부다. 10여개 계열사에서 연매출 7000억여원을 올리는 기업 회장의 집무실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책상 위에는 메모지로 활용하는 두툼한 이면지가 놓여 있다. 보다 못한 직원들이 “회장실 집기 좀 바꾸자”고 건의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그럴 돈 있으면 집(아파트)을 더 잘 지어야 한다’는 게 장 회장의 생각이다. 와이셔츠, 양복, 구두 등도 닳고 닳은 것을 착용하고 있다.

이 같은 내실경영 덕분에 중견 상장 건설사인 동원개발은 부산지역에서 알토란 같은 기업으로 꼽힌다. 부산 경기침체 때도 누적 분양률(95%), 부채비율(42%·작년 말 기준), 영업이익률(13.9%·2013년 기준), 신용등급(AA) 등 주요 경영지표가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1975년 창업 이래 39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동업자들이 다시 찾는 ‘신용맨’

경남 통영의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장 회장은 고학으로 통영상고(현 동원제일고)를 졸업한 뒤 부산에 왔다. 오완수 대한제강 회장과 군대 동기였던 인연으로 전역 후 대한제강에 입사했다.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입사 2년 만에 경리과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업무에 뛰어났다. 7년간의 철강회사 경험을 살려 1971년 철재상을 개업했다. 철근 등 건축자재를 팔던 그는 ‘신용 하나는 끝내주는 장 사장’으로 통했다. 아침에 빌린 돈으로 자재를 사서 낮에 판 뒤 저녁에 다시 돈을 갚았다. “조그마한 장사나 큰 기업이나 시장 신뢰를 잃으면 결국엔 그 업(業)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협력업체에 약속한 공사비보다 적게 주면 당장은 이득을 보겠죠.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부실시공으로 이어져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장 회장은 당시 건축자재를 거래하던 주택업자의 권유로 1975년 주택사업에 뛰어들었다. ‘동원(東園)개발’이란 사명은 그가 처음 지은 집이 동향의 산비탈 언덕에 있었던 데서 따왔다.

장 회장은 동업으로 사세를 키워온 보기 드문 기업인이다. 자본력이 부족했던 탓에 처음 10여년간 50여차례에 걸친 동업으로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지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별다른 다툼이나 갈등 없이 동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건 그가 쌓은 신용 덕분이었다. “둘이서 50 대 50 지분으로 사업을 하더라도 나중에 50이 아니라 49만 가져가겠다는 마음으로 동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동업해본 사람들은 또 함께하자고 부르더라고요.”

‘근면한 사람이 인간을 다스린다’

꼼꼼하고 부지런한 장 회장의 경영철학은 ‘근자치인(勤者治人·근면한 사람이 인간을 다스린다)’이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동네 주변을 한 시간가량 걷고 오전 8시에 출근한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부서장뿐 아니라 담당자나 대리에게도 수시로 전화를 건다. 의사결정이 빠를 수밖에 없다.

장 회장은 아파트 부지를 사들이기 전 최소 세 번은 현장을 둘러본다. 소비자 입장에서 교통 학교 등 입지여건과 공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 주민과의 관계와 인허가 변수 등을 꼼꼼히 분석한다.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모델하우스를 건설할 때는 열 번 이상 찾는다. 최근에는 부인과 세 며느리를 모니터 요원으로 활용했다. “주부 입장에서 내부를 꼼꼼하게 둘러봐야 소비자가 좋아하는 아파트를 지을 수 있잖아요.”

공사 현장에서는 안전을 가장 중시한다. “본인이 살 집이라고 생각하고 튼튼하게 지어라. 늘 안전에 만전을 기해라”고 당부한다.

장 회장은 일하는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나. 밥 먹어가며 일하라”고 말한다. 그는 양복 주머니에 지갑 대신 낡은 봉투를 하나 넣고 다닌다. 이 봉투에는 각종 메모와 함께 약간의 현금이 들어 있다. 야근하는 직원을 보거나 공사 현장을 찾을 때면 식사를 했는지 묻고 이 봉투를 건넨다.

전국 80여개 단지에 5만여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해 온 동원개발은 ‘미분양이 없는 건설사’로 유명하다. 장 회장은 수익성이 높아 보여도 위험 요인이 있는 곳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이지만 ‘브랜드 아파트’ 등 시대적인 변화에는 기민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브랜드가 생소하던 2001년 중견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동원 로얄듀크’를 선보였다. 올해도 울산(625가구) 경남 양산(540가구) 부산 수영구(405가구)와 사상구(554가구) 등 알짜지역에서 새 아파트를 공급한다.

사재 털어 중·고교·대학 운영

고향인 통영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장 회장은 2000년 재정난에 빠진 통영중과 통영제일고를 인수했다. “학교 운영이 힘드니 모교를 살려달라”는 동문과 통영 시민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는 사재 500억원을 들여 폐교 위기의 모교를 전국 최고 수준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후 동원과학기술대(옛 양산대)를 인수한 데 이어 부산에 고등학교를 추가로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교육사업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동아대 법학과를 중퇴한 뒤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어서다. 직원들에게 ‘수주작처(隨主作處·어느 곳에서든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라)’와 함께 ‘무지불립(無知不立·배움이 없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또 건설부문 비중이 너무 크면 위험이 따른다는 생각에서 사업 다각화도 추진해왔다. 지역 금융 선두주자인 경남제일저축은행과 냉장·냉동공장을 보유한 동원통영수산, 원양어업체인 동원해사랑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 장복만 회장 프로필

△경남 통영 출생(1942년) △동아대 법학과 수료(1971년) △동원개발 설립(1975년) △통영수산 및 통영산업 회장(1992년) △경남제일저축은행 회장(1993년) △동원문화장학재단 이사장(1999년) △납세자의 날 대통령표창(2010년) △동원개발 회장·동원학당 이사장·동원교육재단 이사장·동원문화장학재단 이사장(현재)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