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한 대학생들에게 스쿠터를 자전거처럼 대여하면 안되나. 우리나라 지도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는 건. 강연 말고 개인적 모임에서 멘토를 만날 순 없을까."

정빛나라 나누잡 대표
정빛나라 나누잡 대표
정빛나라 대표(29·사진)에게 연세대 캠퍼스는 좁았다. 23살 때 6개월 동안 매출 1500만 원을 낸 오토바이 대여사업을 과감히 접었다. 대기업도 그를 잡지 못했다. 3년간 일한 대기업 영업직을 미련 없이 뛰쳐나왔다.

그녀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걸까. 언제나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와 될 때까지 밀어붙이는 ‘근성’이 최대 무기다.

13일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6년이 지난 지금 멘토링 벤처기업 ‘나누잡(nanuJOB)’ 대표가 된 그녀는 앳된 얼굴의 직원과 함께 나왔다.

“저희 회사 웹 개발을 맡고 있는 친구에요. 미래의 창업 꿈나무죠. 나이는 어린데 실력이 대단해요.”

웹 개발자 김태욱 씨(20)를 소개하는 그녀에게선 한 회사의 대표이자 멘토의 모습이 엿보였다.

◆ 동영상 지도에서 스쿠터 대여까지… "나는 경험주의자"

뭐든 경험해 보고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정 대표는 자신을 철저한 경험주의자로 소개했다. 창업의 길을 택한 것도 아이디어의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영업직으로 3년간 일했습니다. 많이 배웠던 시간이지만 제 아이디어가 바로 실무에 반영되기가 힘든 구조여서 아쉬움이 많았죠. 눈에 보이는 결과로 성취감을 느끼는 편이거든요.”

그녀에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많다. 스무 살 그녀의 머릿속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가 ‘동영상 지도’. 다음 로드뷰와 구글 맵스가 상용화되기 전, 바둑판 형식으로 나눠진 동영상 기반 지도를 생각해 냈다. 무작정 이동형 싸이월드 대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땐 창업이나 수익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이죠. 이동형 대표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왔어요. 아이디어가 좋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써보라고 하셨죠.”

하지만 스무 살 새내기에게 사업화는 막막했다. 실제 사업계획서를 쓰기엔 관련 책도, 도움을 받을 마땅한 곳도 없었다. 정 대표의 첫 번째 아이디어는 계획서에 머물렀다.

첫 실패를 겪은 그녀는 아이디어 실현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우연한 기회에 경품으로 받은 스쿠터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스쿠터 한 대가 확실한 창업 아이템이 됐다.

당시 한 달 용돈 50만 원으로 중고 스쿠터 4대를 더 구입해 시작한 대여 사업은 대박을 터뜨렸다. 넓은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대학생들에게 스쿠터는 없어서 못 빌리는 인기 아이템이 됐다. 기종별로 대여료와 대여기간을 달리 만들어 선택권을 늘리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스쿠터를 24대까지 늘렸다. 월 매출 증가율은 70%를 넘었다. 6개월 만에 15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빛나라 대표와 김태욱 나누잡 웹 개발자(오른쪽)
정빛나라 대표와 김태욱 나누잡 웹 개발자(오른쪽)
◆ 대기업 나와 제2의 창업 인생 '나누잡'과 게스트하우스

정 대표는 6개월 만에 스쿠터 대여사업을 접었다. 사업 규모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녀는 외국계 컨설팅회사 인턴과 대기업 영업직을 거쳐 2012년 못 다한 창업의 꿈에 다시 도전했다.

그해 11월 멘토링 벤처기업 ‘나누잡’이 탄생했다. 나누잡은 청년층에게 직무별 멘토를 연결해주고 취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멘토링 콘텐츠 벤처업체다.

나누잡의 탄생 배경엔 정 대표의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창업을 결심한 이후 도움 받을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부끄러움도 많아 누군가를 찾아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학생들은 특히 수줍어하는 편이어서 누가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질문이나 상담을 하기 어렵잖아요.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까지 약 300명의 멘토와 3000여 명의 회원들이 나누잡의 멘토링과 강연에 참여했다. 현재 명지대, 신라대, 서일대 등 대학에 직접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멘토링은 대규모 강연과 다르다는 게 포인트다. 강연은 다수를 대상으로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 그치는 반면 멘토링은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 정 대표는 나누잡의 모든 멘토링 인원 상한선을 10명으로 제한했다.

“멘토링은 사람을 느껴야 해요.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해야죠. 이해를 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응원자, 지지자가 될 수 있거든요. 나누잡 멘토링은 소규모로 진행돼 멘토링 후에도 참여자와 관계가 유지됩니다. 멘토링별 카카오톡 채팅방이 있는데 책도 추천하고 뒷풀이도 하고 얼마나 수다스러운지 몰라요. (웃음)”

정 대표는 회원들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LG전자 공채 탈락 후 나누잡 멘토링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결국 그 회사에 들어갔다. 기자 지망생 5명이 참여한 멘토링에선 4명이 언론사 입사 또는 관련 학과 진학에 성공했다.

“멘토링 이후 대부분 원하던 직무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직무에 대한 관심을 5%에서 200%로 만들어 주고, 그 관심을 실현시키는 게 멘토링의 힘인 것 같아요.”

정 대표의 최대 위기는 지난해에 찾아왔다. 직원 월급일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그의 통장 잔고에 남아 있는 돈은 30만 원 뿐이었다. 사업 콘텐츠에만 몰두하고 재무 쪽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게 원인이 됐다.

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정 대표의 해결책은 또 다른 창업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업으로 손을 뻗었다. 정 대표는 6개월 전부터 사무실의 빈 공간을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해 수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노동절 연휴를 앞두고 중국 관광객들의 전화가 하루 100통 넘게 쏟아졌다.

◆ "창업 꿈꾼다면 '제2의 구글' 버려야"… 긍정·끈기 중요

정 대표는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허황된 꿈’과 ‘희망’을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대박 벤처기업은 10만 개 중 1~2개에 불과하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9만9999개의 기업 실상은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을 꿈꿔요. 이런 성공 사례는 매우 드물죠. 희망을 갖는 건 좋지만, 허황된 꿈으로 뛰어들었다간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치지 않는 노력과 끈기가 중요합니다.”

그녀는 긍정적인 자세도 강조했다. 나누잡 직원들 사이에선 ‘안 될 거다’가 금기어다. 3초만 생각하면 대안이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지론.

“직원들이 ‘안 될 것 같다’란 말을 자주 했어요. 안 되는 게 어디 있나요. 3초만 생각하면 누군가의 머릿속에 대안이 나옵니다. ‘된다’고 생각하고 해도 어려운 게 창업입니다. 창업에서 ‘안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지요.”

정 대표의 말처럼 나누잡은 늘 ‘된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멘토링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멘토링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 안에 멘토링을 디지털 디바이스로 볼 수 있는 ‘비디오북’도 선보인다.

“단순히 취업을 위한 멘토링 회사가 아닌 ‘배움의 장’이 되는 게 나누잡의 목표입니다. 학생들이 직무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힘들게 취업해 중도탈락 하는 일도 없을 테고, 나중엔 그들이 다른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경닷컴 박희진 기자 hotimp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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