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하나은행장 스스로 물러난 게 가장 잘한 일"
“1960년 농업은행에서 시작했으니 금융계에 몸담은 지 50년이 넘었네요. 이 기간 동안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회고록을 만들었습니다.”

최근《금융은 사람이다》(까치)는 회고록을 출간한 윤병철 한국파이낸셜플래닝(FP)협회장(77·사진)은 쑥스러운 듯 너털웃음부터 터뜨렸다. 70대 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얼굴에서 보타이(나비넥타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는 “보타이를 맨 지 3년 정도 됐다”며 “보타이 맨 것 하나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농업은행,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개발금융, 한국장기신용은행, 한국투자금융 등을 두루 거쳤다. 1985년부터 2004년까지는 한국투자금융 사장과 하나은행장, 하나은행 회장,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냈다. 최고경영자(CEO) 경력만 20년이다. 근엄할 만도 하지만 권위의식이라곤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회고록은 ‘스스로 은행장직에서 물러나다’는 장으로 시작된다. 그는 “국내 은행 역사상 연임이 보장되는데도 스스로 물러난 건 아마 내가 처음”이라며 “하나은행장 경영승계는 77년 삶 동안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적고 있다. “그렇게 자랑스럽느냐”고 물었더니 “새로운 문화를 만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윤 회장은 “은행 CEO 선임을 둘러싸고 말썽이 아직도 많은데 조직 운영의 연속성을 감안하면 연임 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3연임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직에는 항상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데 CEO가 3연임을 하면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초대 하나은행장을 지낸 그는 연임 임기를 마친 1997년 3월 김승유 당시 전무에게 은행장직을 물려줬다.

내친 김에 최근 문제가 되는 은행권의 고액 연봉에 대해 물었다. 그는 대뜸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행은 인허가 사업입니다. 공적인 성격이 짙죠. 이익이 많이 나면 대출이자를 깎아주든지, 예금이자를 높여주든지 해야 합니다. 직원들 고액연봉으로 잔치를 벌여선 안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고, 중소기업의 생존이 어려울 때는 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런 철학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그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진형 전 한국개발금융 회장, 김입삼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멘토들에게 배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개발금융 시절 배당금이 워낙 적은 걸 본 주주들이 차라리 직원들 월급을 올려주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김진형 회장이 이를 거절했다”며 “김 회장은 고객이 맡긴 돈으로 수익을 냈다고 해서 회사가 이익금을 함부로 쓰는 것은 곤란하다고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오랫동안 금융인으로 지내온 사람으로서 개인정보유출 사건 등 각종 사고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공장과 기계가 있는 제조업체와 달리 금융은 사람이 하는 장사”라며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금융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80세를 눈앞에 둔 그는 현재 몸담고 있는 FP협회의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고 싶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재무설계 문화를 확산시켜 개인이 부자가 되면 사회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직도 중국어를 배우고 자원봉사를 하기에 시간이 모자란다는 그는 77세의 청춘이었다.

글=박신영/사진=김병언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