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증세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대학생 우모씨(29)가 10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탈모클리닉으로 들어서고 있다. 우씨는 다음달부터 모발이식 수술에 대해 부가세 10%가 매겨진다는 소식을 듣고 시술 상담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지훈 기자
탈모 증세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대학생 우모씨(29)가 10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탈모클리닉으로 들어서고 있다. 우씨는 다음달부터 모발이식 수술에 대해 부가세 10%가 매겨진다는 소식을 듣고 시술 상담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지훈 기자
#1. 평소 까무잡잡한 피부 탓에 놀림을 받아온 직장인 장모씨(28·여)는 지난 7일 서울 신촌의 한 피부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2월부터 미용성형에 부가가치세 10%가 부과되니 그 전에 ‘합리적 소비’의 찬스를 잡으라는 내용이었다. 부가세 부과 전인 1월 중에 미리 예치금을 걸어두면 나중에 시술해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장씨는 37만원 하는 피부미백 시술을 18만원에 제공하는 1월 특가 이벤트를 선택했다. 세 차례 시술비용 54만원을 선결제한 장씨는 2월 이후 시술을 받으면 부가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환불을 요구한 상태다.

#2. 부산지역 한 경찰서 지능팀의 A형사는 최근 몇 건의 색다른 제보를 접수했다. 내용은 비슷했다. 지난해부터 탈모 치료를 받아오던 피부과병원에서 2월 이전에 연장하면 가격을 대폭 할인해 준다는 제안에 1년치 시술비를 미리 냈다는 B씨(33). 탈모 치료에 10% 부가세가 부과되는데 미리 치료비를 내면 세금만큼 깎아준다는 피부과 설명을 들은 뒤다. 결제 후 알아보니 2월 이후 시술분에 대해선 세금을 내야 했다. 환불을 요구했지만 돌려주지 않자 그는 결국 경찰에 진정을 넣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일 공포하고 2월부터 시행하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법의 건강보험급여 대상이 아닌 탈모 치료, 양악수술, 여드름 치료 등 거의 모든 미용 목적 성형수술 및 피부 관련 시술에 부가세가 매겨진다. 부가세 부과 대상 진료영역은 기존 쌍꺼풀수술, 코성형수술 등 6개에서 25개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부가세 적용 이전인 이달 중 싼 가격에 시술비를 미리 내고 혜택을 받으라는 마케팅이 성형외과·피부과 등을 중심으로 성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월 이후 이뤄지는 시술은 모두 부가세 부과 대상이어서 향후 적지 않은 환불 소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부가세 부과 전 싸게 시술”…판촉전

한 성형외과에서 판촉용으로 보낸 카톡 메시지.
한 성형외과에서 판촉용으로 보낸 카톡 메시지.
서울 신촌의 한 피부과는 이달에 안면윤곽주사, 안면리프팅 등에 대해 최대 50%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10%의 부가세가 붙기 전에 싸게 피부미용 시술을 받으려는 발길을 붙잡기 위해서다.

지난 8일 신촌의 한 피부과를 찾은 직장인 고모씨(26·여)는 1년치 각종 피부 시술 비용 200여만원을 선결제했다. 지난 한 주간 신촌·강남 일대 피부과들로부터 ‘2월에 법이 바뀌니 그전에 시술을 받으라’는 카카오톡·문자 메시지를 다섯 차례나 받은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고씨는 “나중에 시술을 받으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예전부터 고민하던 피부관리를 받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고씨가 찾은 피부과에는 20여명의 대기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판촉전은 법개정을 활용한 ‘꼼수 마케팅’이라는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행령 부칙 2조에 따라 부가세 과세 대상은 시술 시점이 기준”이라며 “시술 예약이나 진료비 납부 시기는 과세 적용 여부와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의료계 반발…“부가세 부당”

부가세 대상에 포함된 진료영역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은 “미용 목적의 시술도 상당 부분 치료 목적을 함께 갖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양악수술은 모호한 과세 기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재부는 국민건강보험법 급여대상 적용이 되는 시술인 경우와 치열교정이 병행되는 악안면교정술에는 비과세한다는 방침이다. 씹기나 발음 기능 개선 등 치료 목적의 수술에는 과세하지 않고, 외모 개선 목적의 수술만 과세하겠다는 의미다. 선천성 턱안면기형, 종양 및 뇌성마비로 초래된 턱뼈발육장애, 그리고 상하악 전후 교합차가 10㎜ 이상인 경우 등이 부가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대해 악안면 전문의들은 의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중규 페이스치과 원장은 “상하교합차가 1㎜라도 앞니를 이용해 씹기가 불가능하고 발음도 샐 수 있다”며 “악교정수술의 보험적용 범위는 매우 좁아 혜택을 받는 환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료 목적의 양악수술까지 부가세 대상이 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드름·탈모·턱관절 치료 등으로 인한 심리적인 개선 효과도 일종의 ‘치료’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병무 서울대 치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주걱턱 환자가 많은데 턱뼈의 구조와 크기가 조화롭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며 “수술을 하면 기능 개선효과는 물론 부수적으로 미용 효과 및 심리적 개선 효과가 있어 미용과 치료는 함께 이뤄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가세 과세로 근심이 많은 곳은 피부과다. 19개 추가 항목 중 14개가 피부과 시술이어서다. 대한피부과의사회 관계자는 “치료와 미용 목적의 구별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포괄적으로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드름 치료는 ‘질환’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대체적 의견이다. 안규중 건국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여드름 치료는 피부 손상을 줄이기 위한 치료행위”라며 “질환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양악 수술의 경우 치열 교정이 들어가면 부가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치료 목적의 시술에는 세금이 매겨지지 않도록 반영했다”며 “탈모나 여드름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준다는 이유로 미용 성형으로 볼 수 없다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수술을 해도 치료 목적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비보험도 억울한데 부가세까지”

여드름·탈모 환자들은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탈모 전문 커뮤니티에는 시행령에 항의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회원은 “비보험인 것도 억울한데 부가세까지 매기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탈모시술에 대한 부가세 부과를 저지하는 데 힘을 모으자”고 주장했다. 탈모억제제를 복용 중인 직장인 주모씨(40)는 “탈모 치료를 미용 목적으로 보는 건 탈모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전국 20만명의 탈모 치료자를 두 번 죽이는 조치”라고 억울해했다.

정기적으로 피부과 치료를 받는 취업준비생·대학생들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대학생 김모씨(26)는 “여드름이 심해 얼굴에서 고름이 나와 일상 생활이 힘들 정도”라며 “여드름 치료를 미용 성형으로 보는 건 행정편의주의”라고 반발했다. 백경우 대한의사협회 이사는 “여드름이나 탈모 치료 등은 기능 개선 측면이 강한데도 부가세를 매기는 것은 세수 확대를 위한 무리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